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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야할 해외학과 한국학
같이 가야할 해외학과 한국학
  • 강성호 순천대·사학과
  • 승인 2011.09.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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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호 순천대·사학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던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후 세계와 한국경제는 더블 딥의 공포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내부경제가 상대적으로 견실함에도 세계경제의 급변으로 인해 1997/8년 IMF 경제위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큰 고통을 당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경제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해외의존도가 100%가 넘는다. 급속한 세계정세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독자적 해외학 못 갖춘 한국

세계정세의 변화가 한국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한국에서 해외학이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이 더욱더 커지게 된다. 외부 세계 상황을 잘 알아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한국의 생존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해외학은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최근의 주기적인 세계경제위기와 재스민 혁명 같은 세계정치 패러다임 변화 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주변 주요 강대국의 사회구조와 대외전략에 대한 심도 깊은 파악이나 그 외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같은 다른 세계 지역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도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이 독자적인 해외학체계를 지니지 못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20세기 초에 한국은 일본 식민지가 됨으로써 원천적으로 해외학 태동이 불가능했다. 해방 후에는 미국중심 세계체제에 의존하게 돼 독자적인 해외학 체계를 발전시킬 기회를 놓쳤다. 해방 후 한국의 해외학은 구미 선진국 중심의 근대화모델을 수용하고 전파하는 데 주력했고,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세계시장에서 주요 구미선진국들과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된 현 단계에서, 기존의 역할을 한계에 도달하게 됐다. 따라서 한국 해외학은 구미 선진국의 모델을 수용하는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독자적 해외학 이론 체계를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을 세계 속의 주요 국가들과 경쟁해서 뒤지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같은 소규모 국가가 독자적인 해외학체계를 육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금처럼 구미 선진국에서 빌려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한국은 인구가 5천만 명 정도이고, 북한과 해외동포를 합치면 8천만 명이 넘는다. 이 정도 인구규모를 지닌 국가를 유럽에다 옮겨놓으면 러시아에 이어 두 번 째인 8천400만 명 정도 되는 독일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6천만 명을 겨우 넘는 영국과 프랑스보다 크고, 인구 4천400만 명 정도의 에스파냐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규모와 경제력을 지닌 영국과 프랑스의 해외학은 독자적 체계를 지니고 있고 그 수준도 가히 세계적이라 할만하다. 이를 보면 한국이 독자적 해외학 체계를 갖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더욱이 한국의 경제적 규모도 세계 10위 정도에 해당돼 독자적 해외학 체계를 육성할 만한 경제적 능력도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한국도 영국이나 프랑스 정도의 독자적인 해외학 체계를 지닐만한 자격도 있고 역량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독자적 한국 해외학 체계의 정립과 발전은 한국학의 지평 확장에 큰 도움을 준다. 한국학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비교 속에서 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이후 한국학의 주된 과제는 식민지시기에 상실한 한국학의 복원이었다. 그동안 한국학은 자체 정통성과 순수성을 복원하고 체계화하는 데 주력하다보니 새로운 외부문화와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한국의 위상 변화, 한국학도 변해야

그러나 높아진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고려해볼 때, 한국학도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주변 국가와 세계 다른 지역의 문화와 학문의 수용해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어나 한국문화는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서로 다른 분과학문 사이를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높이려는 융합학문이 화두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인문학과 예술, 예술과 자연과학 사이의 다양한 결합이 모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해외학과 한국학이 상호간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급속도로 재편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제자리를 굳건하게 자리잡아가는 데 두 영역의 긴밀한 상호협력은 큰 힘이 될 것이다.

강성호 순천대·사학과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한국독일사학회 회장과 한국서양사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독일 역사이론과 사회사상, 비교세계사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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