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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혼섬, 멈추지 않는 젊음의 이름,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올혼섬, 멈추지 않는 젊음의 이름,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 정완호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
  • 승인 2011.08.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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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바이칼호를 가다 ㉻

 

강에서 흘러들어온 물은 호수물과 색깔이 완연히 다르다. 진흙이 섞인 강물은 호수물과 섞이지 못하고 뿌연 빛을 띤다. 사진= 장언효 국민대 명예교수
브리야트 공화국은 러시아 16개 자치공화국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이 몽골계 사람으로 어찌나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지녔는지 무의식중에‘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를 뻔 했다.

 

브리야트 공화국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동경하지만 항상 중국의 침략을 두려워해 러시아에게‘동맹을 맺어 우리를 러시아의 한 공화국으로 편입시켜 달라’라고 요청했다. 그 대신‘형제의 우애를 가지고 신의를 지켜가며 살자’라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어로 브라더란 뜻을 가진 브리야트 공화국이 탄생했는데 올해가 수교 3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브리야트 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에서 호수 쪽 셀렌가강 변에 위치한 SB RAS의 IBNM 소장인 툴로코 노프 박사를 만났다. 그는 몽골계통의 러시아인이다.“석유가 없어도 살 수 있고 가스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라며 세계인의 생명수인 바이칼 호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그는 바이칼호가 동식물 생태계 뿐 아니라 지하자원의 보물 창고라고 자랑했다. 특히 미래의 연료인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의 매장량이 대단하다고 한다.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온도가 낮고 압력이 높아야 고체 상태로 있는데, 이것이 녹으면 부피가 160배나 커진다고 한다. 일부 물속에 녹아 나오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물속에 있는 미생물이 먹어 치워 수중생태계가 정결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IBNM 연구소 근처 셀렌가강 어귀에서 모터보트를 탔다. 배를 타고 바이칼호 가운데로 나가 직경 30cm의 흰색 둥근 원판을 물속으로 집어넣으면 40m깊이까지 보일만큼 투명도가 높다고 했다. 이 호수에 유기물이 많지 않아 돌말이나 클로렐라 같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많이 서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수 가운데 쪽으로 3km정도 나가니 호수 주변과는 물 색깔이 완연히 달랐다. 강에서 흘러들어온 물은 진흙이 떠있어서 그냥 보기에도 뿌옜다. 마치 줄자를 대고 직선을 그어놓은 느낌이다. 밖에서 흘러 들어온 강물이 원래 바이칼호수물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공항에서 여권을 심사할 때와 같이 경계선이 뚜렷했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이칼호 가운데 들어가니 모터보트 선장이 보트에 장치해 놓은 기계로 호수의 물을 먼저 한 모금 마시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에게 한 컵씩 물을 권한다. “바이칼호에 발을 담그면 5년이, 몸을 담그면 10년이 젊어지고, 물을 마시면 영원한 젊음을 유지 한다”라는 전설을 실천이라도 해보려는 듯, 우리는 앞다퉈 여러 잔을 마셨다. 금방 젊어지기라도 한 듯 즐거워했다.

툴로코노프 소장은 우리를 환영하는 의미로 밤에 ‘fire’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캠프파이어를 하며 대화하고 노래하며 술 한 잔 하는 것을 연상했다. 그런데 불꽃놀이 축포를 계속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시베리아의 끝자락 깊은 오지에서 이처럼 화려하고 다양한 불꽃 놀이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로 높이 솟아올라 터지는 불꽃을 보며 연구소장의 환영을 한층 더 느끼게 되었다. 그날 내 머리 위에는 북두칠성 별자리가 높이 떠 떴다. 멀게만 보이던 북극성은 제법 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같은 별자리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는 정말 하나가 아닌가.

지류‘앙가라’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

‘아버지’바이칼호는 336개의 강을 거느리고 있다. 335개의 강은 주변의 산이나 언덕에서 호수로 물이 흘러 들어온다. 호수에서 밖으로 흘러 나가는 강은 오직 앙가라강 하나 뿐이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아버지‘바이칼’은 335명의 아들과 유일한 딸인‘앙가라’가 있었다. 336명 아이의 아버지인‘바이칼’은 혼기에 찬 딸인 앙가라를 아버지 곁에 두고자 딸과 가장 가까이 있는‘이르쿠트’江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저 멀리 가면 아주 잘생긴‘예니세이’라는 총각이 있다고 앙가라에게 귀띔해 주었다. 앙가라는 예니세이를 마음에 두었으나 바이칼은 단호히 반대했다. 다급해진 앙가라는 예니세이와 함께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이를 눈치 챈 바이칼이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그 돌에 앙가라가 그만 맞아 죽었다. 그 돌이 앙가라강 입구에 떨어졌는데 그것이 오늘의 샤먼바위이다. 그리고 앙가라가 흘리는 눈물이 예니세이를 만나러 가는 강물이라 한다.

한민족의 얼이 담긴, 올혼섬

 

바이칼호에는 22개의 섬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가 꼭 가봐야 하는 곳이‘올혼섬’이다. 우리 한민족의 얼이 담겨있는 것 같은 흔적을 느낀다. 1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우리 인간이 중앙아시아를 건너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에 머문다. 바이칼호 주변은 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고, 바람이 많으며 일조량이 충분해 생물의 생장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바이칼호에서도 특히 올혼섬에 머물던 몽골계가 알라스카를 거쳐 북아메리카로 넘어 갔으며 일부는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내려가 韓民族의 뿌리가 됐다고 한다. 바이칼에 머물던 몽골계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뺨과 눈꺼풀에 지방이 축적돼 추위에 적응을 하게 됐다. 다른 한줄기는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를 지나 한반도에 들어왔다. 전자가 북방계이고 후자가 남방계이다. 다른 통로를 거쳐 들어온 북방계와 남방계가 조화를 이루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구성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광수의 소설『유정』에도 올혼섬이 나온다. 최석은 친구의 딸 남정임을 데려다 키운다. 우여곡절 끝에 최석은 정임을 떠나 머물던 곳이 바이칼호의 올혼섬이다. 그곳에서 그는 쓸쓸히 슬어지고, 정임은 최석을 찾아 나선 곳이 올혼섬이다. 단지 바이칼호에 있는 올혼섬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이 이곳을 거쳐 내려오면서 한민족의 얼이 담긴 터전이 바로 올혼섬이다.

올혼섬에서의 숙소는 급조해 놓은 통나무집이었다. 오래된 이곳 전통의 통나무집을 상상했던 우리는 그저‘음~’하는 실망의 소리를 목으로 넘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섬을 둘러보며 그 실망은 사라졌다. 끝없는 초원 위에 포물선을 그리듯 겹겹이 펼쳐진 능선, 돌아보면 눈에 마주치는 호수, 잔잔한 바람이 불어 일렁이는 물결 속에 하늘이 담겨있었다. 절벽 같은 바위를 품은 산들이 저 건너에서 호수를 지켜주고 있는 듯 수평선이 끝없었다. 그 너머에 나의 바람은 무엇일까.

올혼섬에서의 둘째 날에는 섬의 북쪽 끝까지 투어를 했다. 전날의 기막힌 밴을 다시 타고 롤러코스터의 특급 코스를 달리게 되다니…. 결국 진창이 된 길에선 모두 걸어올라 가야 했다. 걷기 시작하자 비로소 무리지어 피어있는 분홍색 들꽃, 소나무 숲 저 위 뭉게구름 핀 하늘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바이칼 주변을 보면 마을 어느 곳이건 샤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데, 올혼섬에서는‘불한당’이란 이름의 성스러운 장소가 일종의 성황당 역할을 한다. 그곳에서 샤먼은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길게 늘어진 끈이 매달린 모자를 쓰고 손에는 칼이 쥐어진 채 화려한 춤을 춘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본 것과 대단히 유사한 형식의 샤먼 춤이 이뤄지리라.

마을 입구 나무에는 붉은색, 푸른색 등 아주 다양한 색상의 헝겊이 매어 있고 수많은 동전이 쌓여 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던져진 동전들을 주워 가거나 건드리는 것을 볼 수 없다. 샤먼을 통해 자기의 병을 고쳐 달라고 빌고, 악귀를 쫓아내 달라고 비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때 동전을 던진다. 동전들이 병마와 함께 달아났으니 그 돈을 건드리면 그 악귀가 자기한테 묻어 올 수도 있다는 미신을 알기 때문이리라.

올혼섬 북쪽 끝에 위치한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바다에 우뚝 선 바이칼의 아들 삼형제 바위산이 있다. 그 곳은 기가 모이는 곳으로 전설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센 기운이 있다고 한다. 그 기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여러 형태로 기를 받아간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나지막한 물가 잔디 위에 텐트를 친 캠핑 족들이 종종 보였다. 아마도 바이칼을 좀 더 가까이 하려는 젊은이들일 것이다. 그들의 낭만과 패기를 보며, 지나온 날 내 젊음을 기억해 본다.

정완호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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