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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가 된 ‘KCI 인용’... 우수 학술지 가려낼 수 있을까
변수가 된 ‘KCI 인용’... 우수 학술지 가려낼 수 있을까
  • 옥유정 기자
  • 승인 2011.08.20 0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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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들, 2011년 ‘학술지 평가’ 에 불만

지난달 5일 한국연구재단은 ‘2011년도 학술지계속평가 신청요강’을 발표했다. 교수들은 “갑자기 발표돼 혼란스럽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평가 지표가 신청서 접수 시작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더 엄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학술지평가 방안이 발표된 뒤인 지난달 29일 한국연구재단은 다시 변경된 지표 일부를 번복했다. ‘논문 1편당 심사위원 수’를 3명 이상 3점에서 4명 이상 5점으로 늘렸던 것을 다시 2010년 기준으로 낮춘 것이다. ‘심사위원 수 4명 이상, 5점 만점’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연구재단 내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신청 마감일인 23일을 한 달 남짓 남겨놓고 평가 지표가 또다시 변경되자 일부 교수들 사이에선 변경된 지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번 학술지평가에서 바뀐 점은 크게 △패널평가 축소 △논문게재율 배점 확대 △KCI 인용지수 도입 △편집위원의 전국성 강화 △투고자의 국내외 분포도 강화 등이다. 평가대상 기간은 2010년이다.

변경된 지표 중에서 핵심 쟁점은 새로 도입된 ‘KCI인용지수’다. 재단 등재(후보)학술지 간의 인용된 횟수를 산출해 배점 5점으로 평가한다. 문제는 학문분야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덕환 차기 대한화학회장(서강대)에 따르면 “외부유통망이 확실한 이공계와는 달리 인문계는 보급범위가 좁아 인용횟수가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공계라고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이공계 논문은 SCI에서 주로 인용되는데 해외학술지에 인용된 회수는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공학분야 학회 관계자는 지적했다.

‘논문게재율’도 도마 위에 올랐다. ‘논문게재율’이란 투고된 논문 중 실제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비율을 의미한다. 게재율이 낮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가뜩이나 학술지가 많은데다가 좋은 논문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니 투고되는 논문이 별로 없다. 김종덕 한국디자인학회장(홍익대)은 “심사가 엄격한 학회에는 연구자들이 투고를 잘 하지 않으려해 게재율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됐다.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창완 세종대 교수는 학술지의 등급화가 자칫 ‘학문의 등급화’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예술분야의 경우 연구자들이 논문을 별로 안 쓰는데다가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논문 투고자의 분포도’와 ‘편집위원의 전국성/중복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라고 한 교수는 전했다. 그런데도 이번 평가에서 ‘편집위원의 전국성’ 지표가 지난해 4개 지역 이상 2점 만점에서, 6개 지역 이상 4점 만점으로 오히려 강화됐다.

김덕규 한국연구재단 학술진흥본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교통량이 증가하면 운전자들의 자율에만 맡겨놓을 수 없게 된다. 기관이 적절히 개입해 교통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재단은 “장기적으로 진입장벽을 조금씩 높이고 학술지 등재를 유지하는 기준도 높여가는 동시에 그 중에서도 우수한 학술지를 가려내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계획”이다.

지나친 학회의 세분화와 학술지의 난립에 대해서는 교수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연구재단이 내놓은 이번 평가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지켜볼 일이다.

 "엄격한 기준이 '편법' 부추겨"

한국연구재단이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밝힘에 따라 일부 교수들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가장 우려되는 두 가지는 ‘KCI 인용 횟수’와 ‘논문 투고량’ 조작이다.

절대적으로 인용횟수가 낮을 수밖에 없는 학회에서는 인용지수를 높이기 위해 ‘딴 생각’을 하고 있다. 학회끼리 서로 논문을 인용해주는 이른바 ‘품앗이’다. 임상우 한국사학사학회장(서강대)은 “인용지수가 몇 백, 몇 천회 단위로 점수 차가 벌어지는 게 아니니 교수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려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논문게재율’을 낮추기 위해 벌어지는 ‘꼼수’도 있다. 일부 학회들은 투고량인 분모 값을 키우기 위해 ‘가짜 논문’을 투고한다. 개중에는 투고도 하지 않은 연구자의 이름이 도용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고자의 국내외 분포도’가 6점에서 7점으로 확대됨에 따라 “교수들은 해외에 나가있는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논문을 가져오라”고 하거나 “‘편집위원의 중복성/전국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이름을 빌릴 가능성도 있다.”

교수들이 제기한 편법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연구재단도 이 같은 편법의 개연성을 알고 있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된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학회는 ‘기준이 아무리 엄격해져도 마음만 먹으면 맞출 수는 있다’는 분위기다. 지원금이 걸려있으니 문제가 있어도 그냥 맞춰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창완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편집위원장(세종대)는 “점점 더 엄격해지는 규제가 교수들을 부추겨 악화가 악화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에 있다”라며 비판했다.

옥유정 기자 o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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