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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4.넘쳐나는 수익사업
연중기획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4.넘쳐나는 수익사업
  • 교수신문
  • 승인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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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학 행보에 빛바랜 ‘교육철학’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시장에서만 흘러나오지 않는다. 학생수 감소로 등록금 수입에 적신호가 켜지고, 대학들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다. 고고한 학자적 자존심을 지키던 교수사회에서도 ‘돈’, ‘돈’하는 소리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학생수 부족으로 등록금 수입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황에서 대학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그러나 그 분주함에 정작 잃어가는 것은 없는가.

2003년부터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적게 된다. 올해 교육인적자원부에 등록된 대학은 4년제만 1백 62개, 정원은 32만 2천5백79명에 달한다. 더욱이 교육시장 개방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대학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각 대학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내용은 재정확보.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이 높고, 기부금문화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와 사학법인의 역할이 미미하니 학생수 감소라는 추세가 곧바로 재정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위기의 현실화

자구책으로 많은 대학들이 학교발전기금모금에 적극 나서 동문 및 학부모의 참여를 호소하는 한편, 재정자립과 경쟁력강화를 외치며 수익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몸을 낮출 대로 낮춘 대학들의 모습은 이미 비즈니스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일부 대학은 ‘진짜 영업’에 뛰어들었다. 전남대는 ‘한니베’라는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고 영진전문대학 역시 패스트푸드점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는 ‘고대빵’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으며, 경희대는 한의학과학기술연구소에서 ‘대보중탕’과 ‘가시오가피차’를 시판하고 있다. 숭실대는 나라정보기술이라는 회사와 손잡고 ‘이지닷컴(easy.com)’이라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숭실대 교수 7명이 기술개발에 도움을 주고 만든 회사다. 학생들의 만족도와 연구성과의 사회환원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비교적 바람직한 수익사업 방식이다.

금융상품도 봇물을 이룬다. 현재 보험을 이용해 가장 적극적으로 발전기금을 모집하는 대학은 중앙대이다. 본교출신 기업인 6백여 명과 신입생 학부모 4천5백여 명을 대상으로 보험가입을 권유하고 나선 것. 연세대와 이화여대도 장학기금 계좌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고려대와 경희대는 1만원의 소액기금을 매달 동문들의 계좌에서 인출하는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한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한 대학들의 노력들은 정작 대학 본연의 모습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학내주차시설 유료화 제도.

이 제도 시행 당시 대학들은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는 교육환경 개선과 면학분위기 조성이다. 비싼 주차요금을 물리면 대학에 출입하는 차들의 수도 감소해 교육환경이 개선된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학교의 수입 확대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첫 번째 목표는 사실상 실패했다. 차는 줄지 않았고, 도로에서의 우선권은 보행자에게 있다는 도로교통법도 무색해졌다. 교수와 학생들은 차를 피해 좁은 인도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줄지어 다녀야 한다. 남은 것은 대학에서 올리고 있는 주차 수입 뿐.

서울의 ㅅ대학은 지난해 새로 지은 건물 지하에 학생들을 위한 갖가지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미용실, 서점, 휴게실은 물론이고, 이동통신회사 대리점과 PC방, 당구장까지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일반 빌딩이나 콘도의 지하 아케이드와 혼동할 정도. 학생들이 이를 필요로 한다는 ‘수요자 논리’가 대학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 대학 김 아무개 교수는 “교육기관인지 장사꾼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연구실, 강사휴게실, 도서관 등 교육과 연구에 필요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학생들이 원한다고 PC방이나 당구장까지 설치한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어학강좌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현재 전국대학 중 사회교육원을 운영하는 곳만 총 2백여 곳이고 평생교육원, 특수대학원도 성황중이다. 그러나 대부분 차별성 없는 강좌 개설로 ‘학원 같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캠퍼스에서 교수와 학생들에게 공간부족의 불편함을 전가시키는 것도 문제다.

침해당하는 교육환경권

98년 단국대 부도 사태 이후 대학들 사이에 ‘대학도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재정확보는 절대절명의 과제로 떠올랐다. 많은 교수들은 이러한 대학의 행보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지만, 교육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찬성하지 않는 것은 이제 위험하고 촌스러운 발상이 돼버렸다. 이와 관련,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국가차원의 장기 저리 융자’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 교수는 “공적 자원 1백 5십조원 중 1조원만 대학에 사용해도 대부분의 재정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며 정부의 인식 부족을 꼬집었다.

그러나 대학의 책임도 간과할 수는 없다. 재정운용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부실 재단을 여전히 끌어안고 있거나 무턱대고 이월·적립금을 쟁여두는 행태는 개선돼야 한다. 특히 재정확보라는 파이를 만들어 쌓아놓는데 급급하기보다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위해 그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대학들이 수익사업에 나서 교육이나 연구를 뒷전으로 한다면 대학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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