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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이분법'이 박정희 신화를 유지시키고 있다"
"'자유주의적 이분법'이 박정희 신화를 유지시키고 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5.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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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이광일 지음,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메이데이, 2011.5)

516 쿠데타 50주기를 맞이해 '자유주의적 시각'이 아닌 '진보의 시각'으로 박정희 체제를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이 문제적인 것은 저자가 자유주의자에게는 '늪'이고, 진보에는 '덫'인 박정희 체제를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이를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익숙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박정희를 5천년의 가난을 극복한 '불세출의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 재조명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박정희의 기념관이자 박물관'이 되길 갈망하는 이들의 평가다. 또 하나는 박정희 체제가 '경제개발과 경제성장에서 크게 공헌'했지만, '군사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의 자생적 발전을 가로막은 독재자'였고, '민주주의를 희생시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이며, 유신체제는 반민주 독재체제라는 평가다. 

이 익숙한 평가는 학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산업화 vs 민주화', ' 경제성장과 풍요가 민주주의를 동반한다 vs 민주주의를 먼저 했어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다' 등과 같은 논쟁구도를 진행형으로 만들었다. 박정희와 박정희 체제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이러한 두 대척점과 논쟁구도는 과연 타당할까. 이러한 논쟁구도 자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겨냥한 곳은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적 비판'이다. '자유주의적 이분법'을 집요하게 비판하면서, 이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을 때 박정희 체제를 분명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기초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난다. "박정희 정권이 그나마 최소민주주의가 유지됐던 제3공화정을 유신체제라는 공개적 독재체제로 전화시켰기 때문에, 즉 최소민주주의를 부정했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라는 평가와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유신체제라는 반인권, 억압의 독재체제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한다"라는 평가다.

저자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대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이해, 즉 '국가가 과연 민주주의 담지자, 그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관점과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킬 수 있는가, 즉 '국가의 반인권, 억압의 주요 대상이었던 노동자, 농민, 빈민의 문제를 경제 문제와 분리시킬 수 있는가' 라는 급진적 관점에서 발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이 "노동자와 민중들의 삶과 노동의 고통이 곧 경제성장의 열쇠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저자에게 "경제발전의 업적은 인정하나 독재를 했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라는 평가는 경제발전과 외재적으로 독재 자체를 분리시켜 결국 '경제성장의 신화'를 받아들이고, 경제발전 자체에 내재해 있는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 눈을 감게 만드는 분석으로 비쳐진다. 문제는 이러한 '자유주의의 이분법적 평가'를 매개로 오늘날 박정희 체제의 정당성과 신화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저자가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이 바로 박정희 신화를 유지시키고 박정희 체제를 환생시키는 생명수"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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