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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의 오용과 남용을 경계한다
저작권의 오용과 남용을 경계한다
  • 김기태 세명대
  • 승인 2011.05.23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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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저작권 침해’ 소송 대처법

사례 하나.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 제12부(재판장 김종근 판사)는 2010년 2월 18일 가수 손담비 씨의 ‘미쳤어’를 따라 부른 어린이 동영상을 삭제한 엔에치엔주식회사(네이버)와 삭제를 요구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대해 저작권법상 공정이용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UCC제작자 우모 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사례 둘. 모 일간지의 인터넷신문 운영사(닷컴사)에서는 신간도서에 대한 서평기사를 무단으로 홈페이지에 게시한 출판사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함으로써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례 셋. 학과 및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무심코 가져다 쓴 사진 이미지가 자기네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에이전시와 법률사무소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대학교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작권의 본질을 망각한 일분 권리자의 횡포 

일러스트 : 김효곤
첫 번째 사례에서는 저작권 남용에 대한 법원의 엄정한 판단이 잘 드러나 있으며, 두 번째 사례는 보도자료 등 취재거리를 제공한 공동저작자로서의 취재원의 노력을 외면하는 등 저작권의 오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면, 세 번째는 창작에 대한 예우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저작권의 본질을 망각한 일부 권리자들의 횡포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잘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필자가 펴낸 『저널리즘과 저작권』에서도 밝혔지만 ‘저작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Dwarfs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말이 떠오른다. 근대 이론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튼’이 “내가 이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중세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먼저 등장한다.

저작권은 '창작에 대한 예우'가 기본정신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다. 따라서 그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먼 곳에 있는 것까지 볼 수 있지만, 이는 우리의 시야가 더 예리하거나 신체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들이 그들의 키만큼 우리를 높이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베르나르는 古典을 높이 평가하고, 우리가 옛 사람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고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곧 앞서 창작 행위를 한 선배 저작자들이 난쟁이에 불과한 후배들을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존재로 향상시켜 준 것이라는 진리를 사람들은 12세기에 이미 깨닫고 있었던 셈이다. ‘저작권’은 바로 이러한 ‘거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자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요즈음 난쟁이들이 벌이는 알량한 권리행사 때문에 거인들에 대한 예우는커녕 저작권의 본질마저 흔들리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가상의 바다 위에 떡밥처럼 사진이나 그림 등 이미지를 뿌려놓고, 무심코 이를 가져다 쓰는 사람들을 ‘저작권 침해사범’으로 몰아 합의금을 뜯어내는, 치사한 권리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거듭 살피건대, 저작권은 반드시 보호돼야 마땅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관용과 배려 또한 권리를 보다 성숙시키는 주요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 출판계 내부에서 저작권자의 무리한 요구에 의해 홍역처럼 번지는 위기의식은 자칫 ‘저작권 무용론’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느껴질 정도로 지나친 것이 아닐까 싶다.

부당한 권리자의 요구에는 '저작물의 창작성'부터 따져봐야

그렇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권리자들의 행태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민사상의 각종 구제제도와 함께 저작권 및 그 밖의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를 침해한 자와 저작권법의 규정에 위반한 자, 저작권법에 규정한 권리에 준하는 법익으로 특별히 규정한 것을 침해한 자 등에 대한 형사상 처벌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저작권법에서 다루고 있는 벌칙의 내용은 권리의 침해죄, 부정발행 등의 죄, 출처명시 위반의 죄 등, 몰수, 양벌규정, 과태료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최고 5년 이하의 징역과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저작재산권의 제한규정에 따라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경우나 저작권의 보호기간이 끝난 경우, 상속인이 없거나 법인이 해산된 경우 또는 저작권의 포기 등으로 권리가 소멸된 경우, 그리고 법정허락에 의한 경우 등에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법률상 위법이라고 할 수 없어 권리침해로 인한 형사처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아울러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 요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침해행위 당시에 피해자에게 저작권이 존재할 것
둘째,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을 것
셋째, 권리침해에 따른 위법성이 있을 것
넷째, 권리침해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을 것
다섯째, 권리침해와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고, 이를 피해자 측이 입증할 수 있을 것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 다음에 가해자의 침해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의 범위가 산정되는 것이다. 아울러 ‘손해액’과 관련해서 법원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인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때에는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부당한 권리자들의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해당 저작물의 창작성을 따져봐야 하며(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보호할 필요가 없으므로), 만일 권리를 침해했다 하더라도 그 손해의 범위가 입증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을 둘러싸고 각각 수만 건의 형사고소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요즈음, 아무리 저작권 침해가 일어났다 해도 막무가내 식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일부 저작권자들의 행태는 곧 자기 권리에 대한 과신이자 오용 또는 남용의 여지가 높다. 업계 관행을 고려해서 협의에 따라 합리적인 배상액을 요구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이용자들 또한 언제 어디서든지 저작권이 잠재돼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매사에 신중하되 남의 저작물을 가져다 쓸 때에는 기본적으로 출처를 명시하려는 노력과 함께 이용허락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창작행위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분쟁의 여지 또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태 / 세명대ㆍ미디어창작학과
현재 한국출판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전문강사와 표절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표절과 저작권』『저작권 쟁점사례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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