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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한국문학번역서 전시회를 들여다보니
[문화] : 한국문학번역서 전시회를 들여다보니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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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16:30:27

문화특구라도 생긴 듯, 월드컵 기간 내내 각종 문화예술 행사와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6월 15일까지 서울 교보문고에서 열리는 ‘한국문학번역서 전시회’도 월드컵 이름을 내걸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서점 교보문고와, 한국문학 세계화에 앞장서 온 대산문화재단이 한국문학번역원과 함께 준비한 ‘한국문학번역서 전시회’는 지금 한국문학이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번역의 수준은 어떠한 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라 할 수 있다.

박완서 소설집 ‘저문날의 삽화’, 김춘수 시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수영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등을 비롯해 영문 번역 작품 27권이 전시돼있다. 그 가운데서도 작가의 이름이 드러난 독립 작품보다는 ‘기생시집’, ‘한국현대시선’, ‘한국의 한시’, ‘한국문학의 이해’ 등 ‘편집도서’와 문학 개괄서들이 많다. 전시된 ‘훈민정음’, ‘한중록’, ‘이규보 시선’ 등의 번역본이 영어로 번역된 작품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 출판 시장에 깔린 많은 외국 서적이 영미문학임을 감안할 때 영어로 번역된 우리 작품은 불공평하게 적은 것은 아닌 지 의심 가는 대목이다.

오히려 불어 번역본이 많은데, 총 56권으로 영어 번역본의 2배가 넘는다. 지금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현대 작품들이 많이 번역된 것도 불어권의 특징. 김성동 장편소설 ‘만다라’, 김원일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 이청준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황석영 소설집 ‘삼포가는 길’ 등 작품성 높기로 이름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됐다.

40권의 작품이 전시된 독일어권도 불어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 작가를 알리는 작업에 공을 들인 점이 돋보인다. 번역 작품 가운데 가장 최근 것은 김주영 장편소설 ‘홍어’. 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정모 장편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등 ‘문제작’이라 이름 붙은 작품들이 많이 번역된 것이 독일 번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마르께스 보르헤스 등 ‘스페인 문학의 발견’ 바람을 기억한다면 스페인어로 번역된 작품 30권의 작품은 많지 않은 수이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상 소설집 ‘날개’, 김만중 소설 ‘구운몽’ 등 고전들이 많은데, 한국 문학의 현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적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어, 일어 등으로 번역된 작품이 ‘기타언어권’으로 함께 묶인 것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이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4개국어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할 가치가 있고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있는 우수한 우리 문학작품’의 번역을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의 방침도 허술한 구석이 많다. 전시된 작품 가운데 세계화는커녕 국내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책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까닭이다.

번역서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디자인과 번역 제목에 있다. 오정희의 불어판 ‘바람의 넋’의 표지에는 난데없이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그려있고, 영어판 서정주 시집 ‘떠돌이의 노래’ 표지에는 갈매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어 마치 ‘갈매기의 꿈’을 연상케 한다. 한국문화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표지들도 많았는데,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탈춤, 초가집, 민화, 산수화, 풍상에 찌든 여인네의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어의 정확한 전달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MEMORYS OF KOREAN QUEEN by lady Hong’은 ‘한중록’의 영어판 제목이고, 최인훈의 ‘둥둥낙랑둥,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불어판은 알맞은 제목을 찾지 못했는지, 거두절미하고 ‘THEATRE’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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