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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벌레더니 여름에는 벼락같이 버섯으로 변한다
겨울에는 벌레더니 여름에는 벼락같이 버섯으로 변한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05.0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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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40> 동충하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세상에 이런 넋 나간/난데없는 개미(蟻)가 다 있나? 기생하는 곰팡이가 임자몸(宿主)인 개미의 행동을 바꾸는 일이 있으니, 곰팡이 포자를 개미가 모르고 먹어 그것이 체액을 타고 뇌로 흘러가 개미로 하여금 기를 쓰고 우듬지로 기어 올라가게 몰아붙이고 잎사귀나 나뭇가지를 발로 꽉 붙들게 한다. 차차 개미는 죽어 버리고 머리에서 덩그러니 괴상한 긴 버섯자루(柄ㆍstalk)가 하늘로 치솟고, 그 끝의 주머니에 든 포자는 바람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땅바닥에 수북이 깔려 어느덧 딴 개미를 몽땅 감염시킨다! 혹여 개미가 이 균류(곰팡이)에 감염되면 옆의 똑똑한 친구들이 곧바로 알아차리고 냉큼 잡아 멀리 내다 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풀과 나무를 분해하는 것은 주로 곰팡이(균류·菌類·fungus)가 도맡아 하며, 균류 중의 하나가 버섯(mushroom)으로 그것은 길고 가느다란 팡이실(균사·菌絲·mycelium)이 엉키고 떼 지어 모양을 갖춘 것이며, 크고 작은 것이 죽은 고목에 한순간에 꽃처럼 피어나 목질부의 섬유소를 말끔히 분해한다. 다른 말로 버섯은 균사덩어리로 그것을 字實體(fruit body)라 부른다. 식용하는 석이, 느타리버섯, 송이 등이 하나같이 곰팡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이따금씩 우리가 곰팡이를 먹는다?! 그리고 버섯은 홀씨(포자·spores)로 번식하고, 올해 떨어진 포자가 이듬해 그 자리에서 균사를 내어서 새 버섯이 태어난다.

헌데, 포자를 괴이하게도 땅바닥이나 나뭇가지가 아닌 곤충(벌레)에 흩뿌리는 것이 있으니 冬蟲夏草(vegetable worms)라는 버섯인데, 겨울에는 분명 벌레이던 것이 여름에는 벼락같이 버섯으로 변한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동충하초는 자낭균류, 동충하초과의 버섯류로, 동충하초屬의 숙주가 되는 곤충은 주로 나비무리의 ‘붉은동충하초’, 매미무리의 ‘매미동충하초’, 벌무리의 ‘벌동충하초’가 있고 그 밖에 딱정벌레나 메뚜기 따위가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채집되는 동충하초는 약 스무 종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붉은동충하초(Cordyceps militaris)다. 다시 말하면 이 種(species)은 나비나 나방이의 번데기나 애벌레에 내키는 대로 덤벼들어 균사를 그들 몸속에 야금야금 쑤셔 박고/뻗는데, 기어코 당장 죽이지 않고 버섯을 충분히 만들어 낼 만큼 자라게 놔둔다고 한다. 하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하루 상관인걸 뭐.

곤충의 겉껍질은 주성분이 키틴(chitin)질로 아주 딱딱한 편이지만 여기에다 무더기로 포자를 들이부어 놓아 거기서 자란 균사가 효소를 분비해 껍질을 녹이고 몸구석구석에 스멀스멀 균사를 뻗어 속살을 속속들이 파먹어 오직 껍데기만 남는다. 그러면서 동충하초 포자/균사를 가진 채로 땅이나 무던히 푹 썩은 나무토막에 기어들어 납작 깔려 파묻혀 죽어버리니 곤충은 보이지 않고 거기서 싹튼 알록달록한 아주 짤막한 한두 개의 자루(자실체)만 위로 우뚝 뻗으니 눈여겨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보통 자루의 길이는 2~8cm이고 종류에 따라 줄기꼭대기는 방망이/공/원기둥/주걱 모양으로 불룩해지며 거기에 홀씨를 한가득 채운다.

가을, 겨울에는 겉으로 봐 멀쩡히 벌레로 보이니 冬蟲이요, 이듬해 봄여름에는 벌레 껍질을 뚫고 풀줄기 닮은 버섯대가 쫑긋 올라와 사뭇 다르게 夏草로 둔갑하니 ‘夏草冬蟲’ 또는 ‘蟲草’라고 한다. 그래도 여태 속이 텅 빈 껍데기는 짜부라지지 않고 고대로 남았으니 우습게도‘벌레에 버섯’이 피었다! 요새는 일부러 누에에 동충하초 포자를 심어서 버섯을 키운다는데, 동충하초가 어떻게 한 몫을 하는지는 논하지 않겠다. 세상천지 어디에도 不걛不死藥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기특하게도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는가. 걸핏하면 세계 곳곳에서 어마어마한 메뚜기(실은 풀무치 무리임)떼가 구름처럼 몰려와, 잔뜩 기승부려서 곡식/풀/나뭇잎을 깡그리 먹어치운다고 하는데, 이때 헤벌쭉 벌린 놈들 입에다 동충하초의 포자를 은근슬쩍 흠뻑 뿌려버린다면!? 감히 풀무치도 일망타진하고 약재도 얻으니 일거양득일 터인데(실제로 많이 연구함)! 이렇게 버섯도 다분히 흥미롭기 그지없기에 만만히 넘볼 생물이 아니다.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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