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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떽쥐베리의 기억
생떽쥐베리의 기억
  • 권영섭 조선대 선박해양공학과
  • 승인 2011.05.09 10: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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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권영섭 조선대 선박해양공학과

권영섭 조선대 선박해양공학과
원고 마감을 하루 앞둔 공휴일 늦은 오후, 차를 몰고 연구실을 향하다 라디오 음악방송 진행자가 인용한 생떽쥐베리의 말에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연구실에 들어가 잠시 생각에 젖어 들었다. "배를 만들고자 하는 어린이에게 바다를 보여주라. 바다를 보며 꿈꾸게 하라……."

필자가 조선공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마도로스(선원)가 되길 꿈꿨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처음으로 큼지막한 배를 타고 여행한 후로 바다와 배가 좋아 매년 여름 여행은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여행을 마치고 귀가 길에 기상악화로 인해 배가 출항하지 못해 일행이 버스를 타고 가도 굳이 홀로 남아 하루를 바닷가에서 지내고는 다음 날 배를 타고 돌아오기도 했다.

고교 시절 어느 겨울,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인천항을 갔다가 마침 어느 섬에 가는 배가 있어 내친김에 타고 갔다가 숙식비가 없어 하룻밤을 장돌뱅이 숙소에서 자고오기도 했다. 산을 보면 그 너머엔 그냥 푸른 바다가 있을 것만 같았고, 바다를 보면 그 너머엔 왠지 모를, 허나 향하고픈 이상향이 있을 것 같았다. 사춘기가 돼 외아들임을 새삼 자각하고는 배를 타는 대신 배를 만들기로 생각을 바꿨다.

위의 생떽쥐베리의 말은 아름답고 훌륭하나 또한 (생떽쥐베리가 의미했든 아니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생각한다. 입시지원 서류를 점검하거나 면접을 하게 되면 가끔씩 바다가 좋아 지원하게 됐다는 경우를 본다. 반가운 일이나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된다. 모형비행기 조립이나 레고 쌓기를 좋아해 이공계를 진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기의 훌륭한 동기부여를 지녔음에도 그 후 요구되는 후속 과제-수학이든, 물리이든, 국어이든-에 대한 탐구가 빈약한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상세한 연구 자료를 살펴야겠지만 직업, 혹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갖게 되는 시기는 초등학교 4, 5학년에서 중학교 1, 2학년 사이 안팎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중학교 고학년부터 고교 과정은 어떻게 돼야 하는 걸까. 자신이 하고픈 일이라면 국내외 현실과 비전을 고려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관심과 적성이 적절하다면 대학을 진학하든, 직장을 갖게 되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과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교육과정이란 자연과 환경을 아우르는 생태교육, 실용교육, 그리고 신뢰의 의미를 새기는 전인교육, 한 마디로 성인교육이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네 교육을-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대학 교육이건 간에-이 자리에서 다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고(accidents)는 물론 역사에서 배우는 일’이 희귀하고, ‘모범답안’에 준하는 그 어떠한 것도 효력이 한참 떨어진다. 이는 우선적으로 가족이건 조직이건 우리 사회가 지닌 ‘일그러진 가족주의’가 지닌 한계일 수밖에 없다. 이 일그러진 가족주의는 가족 안에서의 의사소통 부재에서 빚어진다. 어쩌면 이 의사소통 부재, 소통에 관한 학습의 부재가 교육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사람과의 일이건 직업의 문제이건 진정으로 사랑한다거나 영원성을 지니고자 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일이 우선이지, 서둘러 본 양지로 인해 자연스레 드러나는 음지의 경쟁력 제고만을 위해 법석을 피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생떽쥐베리는 해군사관학교를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일반 군에 입대해 항공기 조종을 배웠다 한다. 하늘을 날면서 확신하게 된 삶의 화두를 간결하되 서정적이며 고귀하게 표현한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비록 해군사관학교엔 실패했으나 결국 배에 대해서도 탁월한 문장을 남겼으며 이는 실패로 인해 얻어진 교훈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배 이외의 것에서도 배에 관한, 나아가 교육에 관한 진실을 터득하지 않았을까.
의사소통의 부재는 사회는 물론 가족을 병들게 한다. 한국사회를 제법 아는 외국인이 제대로 보고 있는 우리의 일그러진 일상을 우리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의 생각이나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은 반면, 부모는 그들이 하는 일을 자식이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일이 이미 조물주에 의해 프로그램 돼 있다고도 하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 믿는다. 머지않은 날,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는 교육이 아니라 가족 간의 의사소통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권영섭 조선대 선박해양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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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2012-07-02 13:49:25
교수님 안녕하세요? 이현진입니다.^^* 이 곳 칼럼에서 교수님 글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필요한 자료 찾으러 검색하러 왔다가.. 교수님 글에서 정보를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