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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철학을 생각한다
한국에서 철학을 생각한다
  • 이수정 창원대ㆍ철학
  • 승인 2011.04.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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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철학을 업으로 삼으면서 한 가지 깊어지는 고민이 있다. 뭐 유달리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고민이 좀 특별한 것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것은‘우리의 철학이 과연 이대로 좋을 것인가’하는 고민이다. 나의 이 고민은 사실 철학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1970년대에 이미 시작됐다. 알다시피 그때는 제법 인문학이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문사철이 지식인 내지 교양인의 기본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분위기도 없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철학도들은 문학과 사학에 대해 뭔가 모를 꿀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이 두 친구[이웃집 문학이와 사학이]가 우리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 일정한 역할을 착실히 해나가고 있는 데 비해, 우리집 철학이는 ‘지금 여기’(hic et nunc)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말하자면 ‘공자왈맹자왈’(칸트왈 헤겔왈)로 그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일제 강점기의 경성제국대학 철학과에서 그 첫걸음을 뗀 우리 철학계의 태생적 한계였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것이 왜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 의미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게 다라면… 그것은 좀 문제가 아닐까…. 그런 고민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당시에 철학공부를 하던 많은 친구들이 공유하던 부분이었다. 내가 좀 엉뚱하게도 ‘박종홍 철학에 관한 연구’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던 것은 그런 고민과도 연관된 것이었다. 박종홍은 그런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주는 훌륭한 롤모델이 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결국 ‘누구누구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그런 것과는 좀 다른 ‘무엇무엇에 대한[문제 그 자체/ 철학적 현상 그 자체/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연구’를 갈망했었다. 박종홍이 칸트와 하이데거의 연구에 머물지 않고 ‘현실’과 ‘철학’과 ‘창조의 논리’를 자신의 개념으로, 자신의 철학으로 내세운 것은 그래서 우리 젊은 철학도들에게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그런 철학적 노력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박종홍 이후 이규호의 ‘사람됨’,  김형효의‘평화’,  김재권의 ‘심신수반’,  박이문의 ‘둥지’,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 등은 그나마 한국의 현대철학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준 반짝이는 흔적들이었다. 비록 그 크지 않음은 아쉬우나 그 없지 않음은 자랑스럽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즉 ‘누구누구에 대한 연구’와 ‘무엇무엇에 대한 연구’는 상호보완적이다. 그것은 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이 기본적으로 지녀야할 두 가지 기본덕목에 속한다. 그것은 학문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한 수레의 양쪽 바퀴와도 같고, 진리를 제대로 보기 위한 안경의 양쪽 렌즈와도 같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그 균형은 이미 아득한 옛날에 공자가 강조해 마지않았던 바이기도 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學而思’라는 것, 그것을 나는 이른바 해석학과 현상학의 기본정신이라고도 해석한다. 진리를 향해가되 전통·텍스트권위의 이해라는 것을 경유해 가는 게 學, 즉 해석학이고, 현상·사태·진리·존재 그 자체의 사유라는 것으로 곧장 다가가는 게 思, 즉 현상학이다.

21세기 한국 철학계의 지형을 살펴보면 學의 영역은 이제 그다지 뒤쳐지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思의 영역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 길에 작은 발자국을 찍어보고자 나는 최근에『본연의 현상학』이라는 것을 지식시장에 내어놓았다.

인간이, 그리고 그 인간들이 만든 인위적인 것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 21세기, 우리 인간들은 거의 일생을 인간의 세계 속에서만 보내면서 마치 인간이 우주의 주인인 듯한, 마치 만유의 지배자인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짓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를 경고하기 위해 나는 인간의 온갖 능력과 완전히 무관한 초월적인‘본연’의 영역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나의 언어로, 한국의 언어로 형상화해서 보여주었다.

나는 그 ‘본연’[본래 그런 것]이라는 것을 하나의 철학적 개념으로서 한국현대철학의 끄트머리에 고리로 걸어놓았다. 그것으로 나는 철학사의 흐름을 감히 우리의 이 한국으로 돌려놓고자 했다. 지성의 소비자들이 그것에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지금 흥미진진하게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수정 창원대ㆍ철학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를 했다. 존재론 분야의 전문적 연구와 더불어 한국화된 철학의 수립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하이데거:그의 물음들을 묻는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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