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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m 심해에서 물고기시체 먹고사는 ‘바다 밑 청소부’
600m 심해에서 물고기시체 먹고사는 ‘바다 밑 청소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1.04.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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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8> 꼼장어

“기실 살은 부수입일 뿐이고 돈줄은 껍질이다. 먹장어 껍질은 끝내주는 비싼 핸드백이나 구두, 지갑을 만드는 데 쓰인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바다를 끼고 사는 항도부산을 찾을라치면 나도 모르게 절로 발길 가는 곳이 있으니 바로 바글바글 북새통인 자갈치시장이다. 여기저기 수북이 산더미처럼 쌓인 무더기해물이 쏟아내는 비릿한 바다냄새에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유난히 억세고 투박한 사투리, 등골 휘고 뼛골 빠지게 가열한 삶을 살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소박하고 검질긴 민초들을 만난다. 잔돌이 많았던 곳이라 ‘자갈치’라 했다던가.

글을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온몸을 뒤트는 장어들의 요동과 재빠른 아줌마의 손놀림이 눈에 선하다. 바깥노점 따라 한가로이 어정거리다가 건물 안으로 드는 찰나에, 움찔, 발걸음을 멈추고는 점잖게 뒷짐 지고 멍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앗! 滿身瘡痍, 껍질이 홀랑 벗겨진 채 생피를 흘리며 함지박 속에서 한가득 와글와글 몸부림치는 꼼장어(-長魚)들에 화들짝 놀란다. 끔찍한 阿鼻叫喚이 따로 없다. 목판구석의 뾰족한 못 대가리에 머리통이 꾀인 장어가 발악하고 있다. 魂飛魄散, 그만 질려 오만상이 찌푸려지고 오들오들 사지에 힘이 쏙 빠진다. 허나, 한껏 이력이 난 아낙은 태연히 웃음 머금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움켜쥔 목덜미에 칼집을 내고 거침없이 껍질을 쫙쫙 벗기는 그 능숙한 솜씨에 혀가 내둘린다. 뎅겅 머리통 베어버리고, 서둘러 피 묻은 살(肉)점은 이 함지에다 야들야들한 껍데기는 저 함박에 내동댕이친다.

교양인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주제를 놓고도 30분쯤은 주절거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 먹장어를 맹탕 모르는 것보단 좀 알고서 이야깃거리삼아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꼼장어’는 다름 아닌 ‘먹장어(hagfish)’다. 먹장어는 세계적으로 60여 종이 되며, 보통 30cm가량 되지만 큰 것은 1.4m 넘는 놈도 있단다. 그리고 600m 넘는 심해에 살면서 작은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죽어 가라앉는 물고기시체를 깔끔하게 먹어주니 ‘바다 밑 청소부’다. 바다에는 햇빛이 500m 가까이만 투과하기에 그 아래는 말 그대로 암흑천지다. 먹 바다 밑에 산다고 ‘먹장어’란 이름이 붙었을까, 아니면 ‘눈이 멀었다’고 먹장어라 했을까.

먹장어는 뱀장어나 붕장어(‘아나고·アナゴ’)와 사뭇 다르다. 먹장어는 어둔 바다 밑에 살기에 눈이 퇴화해 흔적만 남고 비늘이 숫제 없으며, 아가미뚜껑(?蓋)이 없을 뿐더러 뜨고 가라앉는 일을 하는 부레(swim bladder)가 퇴행했고 뼈가 물렁한 軟骨이다. 그런가하면 뱀장어나 붕장어는 어엿한 어류로 뼈가 튼튼하고 딱딱한 硬骨魚類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서 먹장어를 어류에 넣기도 하지만 따로 떼 내어 圓口類로 분류하기도 한다.

먹장어는 채집하기도 어렵지만,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리면 기압차로 대뜸 배가 터져 이내 죽어버리니 연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들은 자웅이체(암수딴몸)로 한 번에 20~30개의 알을 낳으며, 性比(sex ratio·♂/♀)가 1대 100으로 수놈 하나에 암놈이 무려 100여 마리 비율이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그리 만만/녹록찮다는 것을 뜻하며, 싹쓸이한 탓에 마땅히 그 수가 팍 줄어 요즘은 동이난고 한다.

그런데 자갈치시장의 그 먹장어 살은 날래 꼼장어구이집으로 가지만 미끈한 껍데기는 어디다 쓴담. 기실 살은 단지 부수입일 뿐이고 돈줄인 먹장어 껍질(skin)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 그 고생을 한다. ‘장어껍질가공기술’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으뜸이라 딴 나라에서 마구잡이 한 먹장어 배들이 부산항으로 예외 없이 죄다 모이며(그래서 덩달아 우리가 욕을 얻어먹음), 끝내주는 비싼 핸드백이나 구두, 지갑들을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한다.

마중 나온 故友와 함께 시장바닥 한구석에 자리 틀고 앉는다. 이글이글 열 받은 석쇠 위에 알몸인 꼼장어가 살아(?) 오그라들면서 뒤틀림을 시작한다! 마른오징어를 구울 때도 그렇듯 단백질이 굳어지는 꿈틀거림이다. 飢渴甘食이라고, 출출한 판에 노릿하게 익어 단내가 진동하는 꼼장어 한 점에 소주 한 잔?카~~걸치면서 지난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런!? 條件反射가 따로 없다. 군침이 솔솔 입 안에 한 가득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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