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6:00 (금)
[반론] 국립대편파지원위헌소송에 반대한다
[반론] 국립대편파지원위헌소송에 반대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2.05.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5-29 17:56:48
 ◇ 이제환/부산대·문헌정보학과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라는 시민단체의 대표이기도 한 정영섭 건국대 교수(경제학과)가 “국립대에 대한 편파지원은 사립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극히 불공정하며 헌법에 보장된 교육평등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5월 13일자 교수신문에 실린 정교수의 주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국립대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는 우리 나라 국립대는 존립의 당위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운영부실로 인한 재정낭비가 필연적이고, 제공하는 교육의 질조차 낮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정교수의 논리대로라면, 국립대는 퇴출되어야 할 ‘부실기업’이며 부실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의 지속적인 투입은 당연히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교수가 제기한 위헌소송과 국립대 무용론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립대의 존립근거에 대한 ‘시장경제적’ 접근이다. 정교수는 ‘국가가 설립했으니 국가에 운영책임이 있다는 논리는 동어반복의 모순’이라고 주장하지만, 국립대의 설립목적은 정교수가 주장하는 ‘교육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국립대은 가정적으로 불우하거나 재정적으로 빈곤하지만 지적 능력이 우수한 인재들에게 고등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교수는 국립대에 대한 국가 지원이 선진국에서조차 보편적인 현상임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정책입안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미국의 고등교육제도에서도 국립대(정확히 공립대)의 존재와 이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전체 대학의 40%이상이 공립대이며, 전체 고교생의 80%이상이 공립대에 취학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학교육의 80%이상을 사립대가 점유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국립대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닐까.

국립대는 교육의 평등권 보장

다음으로, 국가가 국립대에만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는 정교수의 주장은 차라리 억지처럼 들린다. 1980년 이후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은 감소해 온 반면, 사립대에 대한 재정지원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교육부의 통계에 의하면, 국공립대의 예산에서 국고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의 75%에서 2001년에는 65%대로 추락했으나, 사립대에 대한 지원은 1980년의 10%에서 2001년에는 30%로 늘어난 상태이다. 국립대에 지원되어야 할 국고가 사립대로 흘러 들어간 결과이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들어서 사립대 교수들이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교육부의 요직에 진출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들은 사립대 지원에 대한 당위성의 근거로 ‘교육기회 불균등론’을 항상 들먹였고, 효율성을 내세운 시장경제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교육부가 사립대에 대한 ‘불법’ 지원을 얼마나 강화해 왔는지는 그 동안 벌여온 다양한 명칭의 지원 사업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오죽하면 교육부가 버티고 있는 한 (사립)대학장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겠는가.

마지막으로, 정교수는 ‘특수대학’인 서울대가 마치 우리 나라의 유일한 국립대학인양 착각하고 있다. 서울대에만 해당하는 사항을 모든 국립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를 제외한 국립대는 대부분 지방에 소재하고 있으며, 지방소재 국립대 또한 서울대 중심의 교육부 정책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을 간과했다. 가령, 2000년도 국립대에 대한 국고지원은 서울대에 1천7백30억원, 경북대에 7백54억원, 전남대에 6백39억원, 그리고 부산대에 5백99억원이었다. 이 수치는 서울대에 대한 지원이 3개 거점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합친 것과 유사함을 보여준다.

‘지방’국립대, 서울 중심주의의 피해자

지방 국립대의 상황은 이처럼 서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방 국립대는 해당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핵심 고등교육기관으로 열심히 생존해 왔다. 이들이 있었기에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똑똑한’ 자식을 ‘서울의 대학’으로 진출시킬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는 지방인들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정교수의 주장대로 국립대에 대한 국고지원을 줄인다면, 서울대는 문제가 없겠지만 지방소재 국립대의 몰락은 예정된 결과이다. 지방 국립대의 몰락은 지방대의 몰락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지방의 몰락을 의미한다.

정교수가 주장하는 국립대의 구조조정이나 경영합리화의 필요성은 필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으며 국립대가 해결하여야 할 현안이 분명하다. 그러나 국립대학의 존재근거를 부인하는 듯한 발상과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를 동일시하는 관점은 반론의 여지를 담고 있다. 지금은 지방 국립대에 대한 국고 지원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려야 할 시기이다. 지방 국립대의 등록금은 인상이 아니라 인하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무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지역의 인재들이 서울소재 대학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줄어들고,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