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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_ 사법연수원 파동은 왜 일어났나
시론_ 사법연수원 파동은 왜 일어났나
  • 한상희 건국대-헌법학
  • 승인 2011.03.09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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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검찰의 직무유기


삼성전자나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시위에 나서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언론이 로스쿨 재학생을 곧장 검사로 임용하겠다는 방침에 반발한 사법연수원생들의 시위는 대서특필로 일관한다. 본질적인 사회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장의 흥행을 보장하는 가십성 기사를 추구하는 우리 언론의 천박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동시에 법조인들의 사회적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드러내는 행태이기도 하다. 최고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이 곧장 법 권력과 시장 권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예비 연수원생들의 주장과, 그를 맹목적으로 동의하는 뭇 언론들의 합작이 밥그릇 싸움에 불과한 이번 해프닝을 전사회적 이슈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사건의 근원은 법무부와 검찰의 직무유기에 있다. 실제 이 사건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예견됐다. 검사의 임용프로그램까지도 그 당시에 확정했어야 함에도 검찰과 법무부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반대와 딴죽걸기에만 몰두하느라 이런 의무를 미처 다하지 못한 것이다. 법조인을 선발하고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달라지면 의당 검사나 법관의 임용방식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미리미리 준비하고 예비해 법조인 희망자들의 혼란을 예방해야 했었다는 것이다.

이런 직무방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로스쿨 제도로 훨씬 더 많은 변호사들이 활약하게 되는 향후의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법 문제가 법원과 검찰청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그것도 본인소송이 아니라 변호인을 선임한 형태로 말이다.

더구나 로스쿨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법조인을 양성한다.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배운 변호사와 그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로 국제적인 망신거리라고 배운 변호사가 같이 배출되는 것이 로스쿨 제도다. 다양한 법률지식과 그보다 더 다양한 기초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법적 판단을 다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법원과 검찰청을 종착점으로 해 처리된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달라지는 법률사무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에는 우리 법원과 검찰의 인력은 너무도 부족하다. 2006년 통계지만, 우리 법제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경우 국민 10만 명당 법관의 수는 24.5명이며 검사는 5.4명이다. 프랑스는 각각 11.0명과 15.6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숫자는 턱없이 적어 법관의 수는 5.4명이고 검사는 3.6명에 불과하다. 소송사건이 훨씬 적은 스웨덴만 하더라도 각각 13.9명과 9.9명임을 감안하면, 우리 법원과 검찰은 턱없이 적은 수의 인력만으로 거의 땜질 수준의 업무를 처리해온 셈이다.

요컨대, 독일과 프랑스의 최소치만 고려하더라도 현재보다 두 배 이상의 인력이 조속히 확보돼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법조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독점적 지위에만 집착한다. 자신들만이 가장 우수하며 가장 윤리적이며 가장 헌신적이라는 전제 하에, 숫자를 조금만 늘려도 질이 떨어지고 타락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전투구로 법질서를 흐려놓을 것이라는 걱정을 서슴없이 내 놓는다. 로스쿨을 2천명 정원으로 못 박는, 전무후무한 파행을 만들어놓고 그것도 모자라 정원제 시험으로 변호사의 숫자를 제한하겠다고 고집한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법률서비스에 해당하는 법관과 검사의 숫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이번의 사법연수생들의 집단행동은 그래서 밥그릇싸움이 된다. 그것은 연수생과 로스쿨생간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법조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과 새로이 그에 진입하려는 신참 법조인층간의 싸움이다. 혹은 우리 법조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진입장벽에 대한 시대적 거부감이 표출되는 단초다. 물론 여태까지의 경험칙 상 이번의 사태는 그냥 유야무야 미봉의 방책으로 흘러가버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뚫어보고 그 최적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기에는 지금도 늦었다는 사실이다. 보다 많은 지혜의 결집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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