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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 표절’ 독일 국방장관이 사임한 이유
‘박사논문 표절’ 독일 국방장관이 사임한 이유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1.03.09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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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성의 힘 … 이것이 대학의 자존심”


칼 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전 독일 국방장관
박사논문 표절’ 의혹으로 공방을 벌였던 칼 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39세,사진)이 지난 1일, 결국 사임했다. ‘차세대 보수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그가 안겔라 메르켈 총리의 강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난달 16일, 구텐베르크 전 장관의 박사학위 논문(2007년) 표절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바이에른주의 바이로이트 법학과에 제출한 「헌법과 헌법조약-미국과 유럽헌법의 발전단계」라는 박사학위 논문 475쪽 가운데 100쪽 이상이 정확한 출처 없이 인용됐다는 것이었다. 안드레아스피셔 레스카노 브레멘 법과대학 교수는 이 논문의 비평을 쓰기 위해 구글 검색을 하다가 표절 의혹을 발견했고,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이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이후 2주 동안 ‘논문 표절’ 공방은 독일을 뜨겁게 달구었다.

구텐베르크 전 장관은 처음엔 논문 표절을 부인했고, 메르켈 총리도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구텐베르크는 학술 보좌관으로 뽑은 것이 아니라 장관으로 뽑은 것”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사임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70%의 국민이 용서한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국민적인 인기도 높았다.

지난달 23일, 박사학위 논문을 수여했던 바이로이트 대학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논문 표절 여부를 검토한 뒤 표절 사실을 찾아냈고 박사논문을 취소시켰다. 야당은 독일 연방 하원에 구텐베르크를 불러 4시간 동안 논문 표절 문제와 도덕성을 집중 추궁했고, ‘사기꾼’이라며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 전 장관이 사임을 결심한 배경에는 ‘독일 지성의 힘’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학총장연합 마가레트 빈터만텔 대표는 400여 대학의 총장 이름으로 “잘못을 한 사람은 마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치에서도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라며 구텐베르크를 옹호하는 메르켈 총리를 비판했다. 또, 3만 명 이상의 상당수 학자들도 메르켈 총리에게 ‘공개 항의 서한’을 보냈다.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들의 사퇴 요구가 잇따르자 구텐베르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독일에서 13년을 살며 『독일 교육 이야기』등을 쓴 박성숙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무터킨더의 독일 이야기’에서 전했다. 박 씨는 “구텐베르크 장관을 퇴임시킨 힘은 대학교수들”이라며 “인기 절정의 이 젊은 정치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한 것은 야당이 아니라 독일 지성인들의 분노였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이번 사건을 보며 부도덕한 정치인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가 아니라 교수들의 영향력에 놀랐다”며 “교수들의 완고함이 바로 독일 지성의 표상이요, 대학의 자존심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장관의 사퇴 이후 여론은 “한 정치인의 사임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박사논문을 담당했던 교수들의 직위해제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의 블로그에도 한 인문사회학계의 박사는 “한국 고위공직자들의 표절 문제 덕택에 관련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며 “표절에 대한 연구윤리규정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련 교수의 연대책임을 엄중하게 촉구하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도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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