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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는 역사의 편린 … ‘전체를 보는 틀’ 제시하고 싶었죠”
“철학사는 역사의 편린 … ‘전체를 보는 틀’ 제시하고 싶었죠”
  • 글 사진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2.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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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세계철학사 1-지중해세계의 철학』 출간한 철학자 이정우

1998년 서강대 교수직을 사임한 이후 『삶, 죽음, 운명』(1999), 『접힘과 펼쳐짐』(2000), 『주름, 갈래, 울림』(2001) 등의 저작과 2000년 시작한 철학아카데미의 강의를 통해 ‘객관적 선험철학’을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론, 자연과 존재에 관한 이론으로 확장하는 사유 작업을 전개했던 철학자 이정우 소운서원 원장이 다시한번 ‘사유의 큰 그림’을 그려냈다. 모두 3권으로 기획한 『세계철학사』(도서출판 길)가 그것이다.

최근 그는 1권 『세계철학사1-지중해세계의 철학』을 내놓았다. 2권(아시아세계의 철학)과 3권(근현대 세계의 철학)은 각각 내년과 내후년쯤 완간할 계획이다. “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의무는 작은 작업들을 꾸준히 보면서 이를 성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5~10년 주기로 계속 책을 수정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실 『세계철학사』라는 제목부터 ‘기 죽이는’ 이런 통사적 저작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철학연구소(이을호 역, 중원문화, 2010)의 보급판, 한스 요하킴 슈퇴리히(임석진 역, 분도출판사, 1976~1978) 저작 등이 일찍부터 이름을 내건 대표주자였다. 그러나 이 원장은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는 실질적으로는 서구 철학사이며, 그 모두에 중국과 인도의 철학 전통을 일종의 ‘前史’로서 배치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식의 구도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철학연구소의 ‘세계’철학사에서도 거의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 그가 『세계철학사』를 저술한 의도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2000년 철학아카데미를 시작하면서 시민들과 만나는 가운데, ‘세계철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은 지적 욕망이 작동했다. 오늘날 편향된 세계화로 흘러가는 ‘글로벌라이제이션’도 그로 하여금 ‘보편성’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번 책은 개인적인 것과 전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결실을 맺은 부산물인 셈이다. “우리가 서양철학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1백년 정도 됐지 않나. 이제는 플라톤 연구다, 데카르트 연구다, 이렇게 철학의 편린들에 집착하기보다 철학의 세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들, 한국에서 이뤄진 다양한 철학적 작업을 배치하는, 또는 장을 구성해주고 싶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이번 기획의 단점, 한계가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그 스스로 말하듯, “연구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저술을 고려할 때 할 게 많다보니, 부족한 것이 많다. 미시적인 세부 성과들을 비교 연구해야 하는데, 하질 못했다.” 그래서 더욱 동료 학자들의 피드벡이 필요하다.

그는 지금 2권과 3권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다. 아침에 1~2시간, 그리고 낮에는 성균관대 근처에 마련한 연구실에서 1시간 정도 집필에 몰두한다. “전체의 틀이라든가, 스토리는 모두 구성돼 있는데, 이걸 풀어내는 게 문제다. 집필 준비는 상당히 많이 했다. 10년 정도 준비했으니까.” 그런 준비 때문인지 이번 『세계철학사』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인문지리적 설명이 즐비하다. 한 철학자의 사상이 태어난 배경과 당대에 끼쳤던 영향과 함께 그의 철학사상이 도달한 높이까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원고지 3천200장 분량이다.

『세계철학사2』,『세계철학사3』의 작업이 어쩌면 더 험로를 걸어갈지 모른다. 2권 ‘아시아세계의 철학’은 온통 논쟁 자갈밭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동북아 즉 아시아 세계에 전체를 관류하는 철학사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시아 세계의 철학은 없다. 별도의 철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출간된 1권보다는 내년 출간될 2권 ‘아시아 세계의 철학’이 더욱 기대된다. 

방대한 저술에 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문학 문제를 고민한다. 좋은 저술이 아카데미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개인 역량의 문제라기보다, ‘시스템’ 문제라고 봐야 한다. 점수나 돈 안 되면 왜 쓰냐고 반문한다. 아무 전제 없이 순수하게 글을 쓴다는 개념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인문학은 ‘책’인데, 모든 것을 ‘논문’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다. “학문을 제대로 하는 것은 정말 철학사를 보면 명확하게 나타난다. 뭔가 제도화되고, 종교화되고, 권력화되는 순간, 철학은 그 순간 다운돼버리고 만다. 해체 되고 뭔가 자유롭게 될 때, 철학은 우후죽순 피어난다. 우리가 지금 처한 시대가 바로 이런 ‘관학화’의 시대같다.”

『세계철학사1』은 초판 2천부를 찍었다. 저자나 출판사측은 5천부정도 나갔으면 바라지만, 만만치 않은 부수다. 이정우 소운서원 원장은 국내 출간과 함께, 영역본과 일역본 출간도 타진하고 있다. 학문 공동체에서의 비판과 논쟁에 목말라있기 때문이다. 일역본을 출간한 경험을 살려보고 싶어하는 것도 그래서다. 2권과 3권이 어떻게 영글어갈지, 학계의 반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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