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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비엔나 학단
21세기의 비엔나 학단
  • 이중원 / 서울시립대·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2.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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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1920년대 시작하여 20세기 전반부를 수놓았던 하나의 철학운동이 있었다. 소위 ‘논리경험주의’의 기치를 내건 비엔나 학단의 운동이 그것이다.

이 운동은 당시 점점 더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과학지식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 그것의 기초와 의미를 보다 명료화하고, 그럼으로써 기존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으로부터 강조되었던 존재론적·가치론적 주장의 모호함이나 독단성을 제거하려 한 철학운동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과학지식이 어떻게 (인식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얼마만큼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인가를 밝혀줌으로써, 과학지식의 유용성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분명 그 때와 다른 시대적 상황이자 논리 경험주의적인 접근방식으로는 더 이상 해결이 곤란한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는 21세기의 오늘, 이 운동에 다시금 관심을 갖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바로 이 운동이 지녔던 공동체적 특성, 다시 말해 철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학문분야의 전공자들이 정기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기존의 철학적 체계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상호간 협동작업을 통해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새로운 철학 조류를 형성해 나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운동에는 비엔나 대학의 물리학교수를 중심으로 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법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철학자들이 수년간 지속적으로 참여했었다.

오늘 우리는 20세기 초에 인류가 직면했던 문제들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 전면적이면서 총체적인 위기와 관련된 문제들 가령 심각한 환경오염이 빚어낸 인간 생존공간의 붕괴 문제,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이 빚어낸 인간 복제의 문제 등에 직면하고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듯이,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개별-분산적이고 논리-분석적인 접근방식으로는 그 해결이 어렵다. 자연관·생명관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가치 정립,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탈분석적 방법론의 개발을 요청하고 있다.

결국 이는 추구하는 철학적 지향과 목표가 분명 다르지만, 20세기 비엔나 학단의 경우처럼 철학을 포함하여 관련된 분야들이 함께 협력하는 새로운 철학운동을 필요로 한다. 학제간 연구를 기반으로 이를 운동적 차원으로 끌어올릴 주체의 건설, 곧 21 세기를 꿰뚫고 나갈 새로운 의미의 비엔나 학단의 건설이 필요하다. 이제 누군가를 중심으로 이 운동이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이중원 / 서울시립대·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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