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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화는 국립대학을 팔아먹는 것이다"
"법인화는 국립대학을 팔아먹는 것이다"
  • 최갑수 서울대 교수
  • 승인 2011.01.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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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_교수신문 586호 박성현 교수 기고를 읽고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현재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대위'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12월 8일 국회는 예산관계법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또 해당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않은 ‘서울대법인화법안’을 끼워 넣기로 날치기 통과시켰다. 서울대 학장단은 11월 15일에 건의문을 손에 들고 국회를 방문해 날치기의 빌미를 제공했고, 명색이 교육기관의 장인 서울대 총장은 위 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안을 제출해 놓고도 졸속처리에 대해서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이 환영의사를 밝혔다.

법안이 갖는 절차적 하자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법인화란 국립대학으로서 서울대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신분을 원천적으로 변경시키기에 최소한 이들의 의견을 물어야 마땅하거늘, 제정과정에서 이에 준하는 어떠한 절차도 없었다. 전임 총장은 일방적인 홍보로 일관했고, 대의기구로 자처하는 대학평의원회는 본연의 임무는 망각한 채 요식행위를 채우는데 그쳤다. 법인화법안의 제정과정은 서울대가 과연 대학에 걸맞은 품새를 갖추고 있는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문제는 법안의 내용이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안이 대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애초 서울대가 법인화로 노렸던 것은 국립대의 법인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획기적인 재정지원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서울대는 1980년대부터 총장에게 예산편성권과 직원인사권이 없는 것이 대학발전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해 1990년대 중반에 ‘서울대특별법’을 추진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지난 정권 말부터 ‘선택적 법인화’로 정부의 정책이 가닥을 잡자 이를 당근으로 보고 덥석 문 것이다. 어떻게 꿩 먹고 알 먹고 할 수 있겠는가! 교과부나 언론 또는 일부 교수 등 법인화 찬성론자들이 법인화를 하면 대학의 자율성이 확대된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어왔지만, 사실 서울대가 기대한 것은 획기적인 재정지원이었다.

그러기에 전임 총장은 자율성의 제고와 함께 재정지원을 늘 강조했고, 부끄럽게도 일부 교수들은 법인화하면 웬만한 사립대학 수준으로 봉급이 오르겠지 은근한 속내를 품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서울대법인화법안’이 통과된 지금, 법인화가 학교의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려줄 것으로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법안에 딸린 ‘비용추계서’를 보면, 서울대에 대한 국고 지원은 법인화 이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기에 찬성론자들은 이제 자율성의 확대가 법인화의 당근인양 목청을 높인다. 과연 그런가? 교과부가 대학 좋은 일을 해 준 적이 있던가! 법안을 보면 그런 주장이 허구에 불과함을 곧 알 수 있다.

법인화란 무엇인가? 대학의 지배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사립대학처럼 이사회가 들어서는 것이다. 사립대학에 있어본 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안다. 교수나 공무원이 법인의 직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신분이 이전보다 극히 불안정해짐을 말한다. 사립대학처럼 학교의 주인이 없으니, 이사회를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사회는 외부자 위주로 구성되는데다가 당연직으로 들어오는 교과부 차관과 기획재정부 차관이 주도할 것은 너무도 뻔하다. 더욱이 시행령 제정, 이사회 구성, 상임감사의 추천, 경영평가 등 인사와 재정의 핵심적인 사안에서 교과부장관은 승인권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전에는 대통령이나 장관의 눈치를 보던 것이 법인화로 이제 관료가 이사로, 상임감사로 직접 대학 내부에 개입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흔히 법인화를 반대하는 것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경쟁적인 교육 및 연구 환경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국립대학이라면 맞을지도 모른다. 일본 국립대학은 법인화하기 이전에 수익사업은커녕 산학협동도 없었고, 기부금도 받지 않았다. 그만큼 국가의 책무성이 확실했고, 그러기에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법인화가 이뤄진 것이다.

우리의 국립대학은 어떤가. 법인화의 효과는 이미 국립대학에조차 다 들어와 있는 실정이다. 경쟁이 없기는커녕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법인화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지배구조의 변화와 함께, 총장직선제의 폐지이다. 교과부가 만든 문건들을 보고 필자가 정부가 법인화로 노리는 것이 결국은 총장직선제의 폐지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하지만 법인화에서 대학발전의 어떤 의지도 읽을 수 없는 필자로서 이런 심증이 기우가 아니길 빌 뿐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법인화 이후에도 총장직선제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서울대 법인화는 실익도, 명분도 없다. 그런 것이 어떻게 추진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서울대 특권의식과 우리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오불관언주의가 크게 작용했다. 전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율이 가장 높아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가장 낮은 우리에게 서울대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발전에 결정적인 고리이다.

서울대 법인화는 이를 망각한 처사이다. 그것은 국립대학체계를 무너뜨려 사립대학을 우리 고등교육의 주인으로 만들 것이다. 교과부가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에서 정부 의존의 재정구조와 상대적으로 값이 싼 등록금을 국립대학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국가기관이란 말인가! 다른 국립대학의 교수들이 대부분 법인화를 반대하는 것은 변화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파국이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법인화로 재정을 늘릴 확실한 방안으로는 사실상 등록금 인상이 유일하다. 이렇게 되면 누가 좋아할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라도 ‘서울대법인화법안’을 폐기해야 한다. 기존 국립대학체제 안에서 얼마든지 변화를 모색하고 대안을 강구할 수 있다. 법인화가 유일한 대안이라면, 왜 똑같은 법인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우리의 사립대학이나 미국의 4천개 가까이 되는 대학들이 교육 및 연구 능력에서 천차만별이겠는가.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사치품이 아니다. 대학은 국가나 기업의 도움도 받고 또 국가나 기업의 발전에도 이바지해야 하나, 국가나 기업과는 다른 존재이유를 갖는다. 교육의 공공성은 한 사회의 성찰능력의 담지체로서의 대학이 살아 숨 쉬어야 하는 최소한의 생태계이다.

최갑수 / 서울대 서양사학과
현재 ‘서울대법인화반대공대위’(민교협, 공무원노조, 대학노조, 총학생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민교협 상임의장, 전국교수노조 준비위원장, 한국서양사학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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