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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조정자 또는 계발자의 역할
[나의 강의시간] 조정자 또는 계발자의 역할
  • 김동환 한성대·한국어문학부
  • 승인 2011.01.03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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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희는 목마른 사슴입니다.” “뭐가 그리 목마른데?” “교수님께 제 개인의 상대적 능력에 대해, 단점에 대해, 미덕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강의의 연장선에서 진행하는 면담 지도 시간의 한 풍경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유난히 정보에 목말라하는 존재이다. 나는 한동안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일로 교수로서의 몫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활성화된 정보’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면담 지도를 시작했다. 강의만으로 부족하기에 강의실을 연구실로 확장하는 셈이다.
매주 10여 명과 1시간 정도 면담 지도 시간을 갖는다. 나는 멘토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묻고, 같이 찾고, 슬그머니 내어 준다. 학생들은 면담을 통해 내게 새로운 존재로 다가오고 나는 교수법과 교수 내용을 가다듬기 위한 정보를 얻는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한 번의 발표와 한 번의 지정 토론 그리고 일반 토론, 타 발표에 대한 항목별 평가와 발표 주제의 개선 방안 제안, 면담 지도 등을 경험하게 된다.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 구조다. 진행하는 나도 치밀하지 않으면 운영하기 어렵다. 그런데 학생들은 힘든 과정임에도 자신들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게 된다는 사실에 기꺼이 임한다.

그들이 얻는 정보는 다양하다. 같은 강좌의 수강생들로 구성되는 청중(나는 발표자들이 설득해야 하는 대상을 명시한다는 측면에서 수강생들을 청중들이라 지칭한다)들로부터 발표에 대한 평가 정보, 서술형으로 이루어진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를 얻는다. 이 정보들은 면담 시간을 통해 해석되고 재조직돼 전달된다. 나와 학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청중들의 평가 내역, 제안 내용, 발표 능력 향상 방안,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을 같이 모색한다. 상호 만족도가 매우 높은 부분이다.

나는 강의 기간 내내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조율사로서, 계발자로서의 역할이다. 토론 과정에서 미숙한 청중들이 많기에 흐름이 원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적절하게 대응하고 정리해 주는 조율사로 작용해야 한다. 극도로 긴장하지 않으면 수행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학생들의 능력과 방향을 찾아주는 계발자로서의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으로 성격화된다. 토론 시간 간간이, 문제 해결 시간의 대부분, 면담 지도 시간 내내. 그래서 그들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 어제 밤에 악몽을 꾸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질문하시는 꿈이요.” 그러면서도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악몽을 그리워한다고 넌지시 전해온다.

사진제공: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조율사로서, 각성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서 생각하고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어느 날은 밤새도록 지나간 드라마를 봐야 했던 적도 있다. 수강생이 많은 학기에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강의 평가 시 주관식 기술을 통해, 토론의 흐름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한 두 마디의 멘트를 듣는 일, 예기치 못했거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질문을 받는 일이 즐겁고 기대된다는 메시지를 전해 올 때, 한 학기 동안의 피로감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면담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근거를 알게 돼 너무 뿌듯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올 때 나 자신도 새삼 이 직업을 애틋하게 생각하게 된다.

교수법으로 고민을 하던 신임교수 시절에 외국의 유명 교수 강의법이란 책을 구해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있던 한 구절이 지금껏 기억에 남아 있다.
“한 학기 강의가 끝났는데 탈진 상태에 이르지 않으면 강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김동환 한성대·한국어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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