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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 과학시론] 기초과학 원년의 꿈 …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진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新年 과학시론] 기초과학 원년의 꿈 …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진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 이덕환 서강대·화학
  • 승인 2011.01.03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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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우리도 기초과학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시작한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에 매달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우리가 과학기술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가연구개발 예산 중 기초·원천의 비중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비지니스벨트라는 명실상부한 기초과학 거점까지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야만 장기적 안목에서의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사실이다. 본래 기술은 기술자의 오랜 경험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개발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도르래와 수레바퀴가 대표적인 예다. 과학적 근거를 찾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원리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활용이 가능하기만 하면 어떤 기술도 수용이 가능했다. 1만 2천년 전부터 시작된 육종, 천문관측, 灌漑, 토목, 건축, 전쟁무기 기술들이 모두 그렇게 개발됐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경험과 시행착오에 의존하는 기술 개발은 낡은 패러다임이다. 비록 인류 문명 발달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런 고비용 저효율의 기술 개발 패러다임은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대세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창성도 중요하지만 효율도 무시할 수 없다. 기술에 대한 과학적 이해도 중요해졌다.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기술은 소비자를 현혹시키려는 불순한 ‘신비술’이나 ‘類似 과학’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뜻에서 기초과학은 미래 기술개발의 원천이라는 주장은 명백하게 옳다. 실제로 그런 예는 너무 많다. 20세기 초에 정립된 양자역학이 기술 개발에 기여한 대표적인 기초과학의 산물이다. 본래 양자역학은 뜨거운 물체에서 방출되는 빛의 색깔 분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기초적이고 이론적인 성과가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첨단 기술은 양자역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러스트 : 김효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기초과학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만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동안 우리는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과학비지니스벨트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우리도 머지않아 꿈에 그리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도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노벨상이 물리, 화학, 생리학과 같은 핵심 기초과학 분야의 성과를 이룩한 과학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가능성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고, 노벨상과 같은 세계적 명성을 위해서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은 主客이 뒤바뀌고, 本末을 혼동한 것이다. 기초과학의 가장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외면하고, 기초과학의 정체성까지 훼손시키는 어리석은 주장이기도 하다. 열매를 따먹고, 명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결국에는 부끄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진짜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기초과학 원년의 꿈은 곧바로 무의미한 거품으로 끝나버리게 될 것이다.

기초과학은 우리에게 세상 만물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온전한 세계관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적 세계관에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과학적 이해를 철저하게 외면한 도덕적 세계관이나 종교적 세계관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세계관은 특정한 집단이나 문화권의 독선적인 선택으로 끝나버린다. 그런 세계관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없다.

결국 우리가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가장 중요한 진짜 이유는 우리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진화에 당당하게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현대는 물론 미래의 세대를 위해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기초과학의 열매를 만들어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사실 그런 일은 창조적인 일을 해낼 여유를 가진 소수의 지배층이나 富國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진정한 선진국의 國格을 갖추기 위한 부자들이 호사를 누려보겠다는 것이다.

기초과학 원년을 맞이하면서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과학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장의 경제 성장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과학자들은 사회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이 분명하다.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사회 참여를 외면했던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과학자에게 사회 참여는 남의 것을 모방해서라도 사회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한정돼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전혀 다른 방향의 사회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과학자가 모든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윤리의 경우처럼 과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슈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사회적 갈등과 논란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불거지는 거의 모든 사회적 논란과 갈등은 현대 과학이나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극도로 분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의 과학과 기술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과학자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과학적 진실은 하나뿐이라고 하더라도 과학적 진실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념적 성향이 더해지면 그 해석은 더욱 복잡해져서 혼돈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제 과학적 진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 과학자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서로 다른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개방성, 비판성, 민주성(탈권위성), 합리성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과학적 진실의 해석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결과를 냉정하게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기초과학 원년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이덕환 서강대·화학

필자는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 연구원을 지냈으며, 대한민국과학문화상(2004)을 수상한 바 있다. 서강대 화학과 교수로 있으며, 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이덕환의 과학세상』등이 있으며, 옮긴 책에는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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