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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 ‘통합’, ‘소통’에 역점 … 학문 위기감 속 위상 정립 고심
‘공정사회’, ‘통합’, ‘소통’에 역점 … 학문 위기감 속 위상 정립 고심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1.01.03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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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학회장에게 듣는다

우리 학계는 2011년을 어떻게 맞이할까. 한국사회학회, 대한수학학회를 비롯한 주요학회는 새해에 어떤 연구사업을 구상하고 있는지 미리 살펴봤다. 또 세계화와 대중화 등 당면한 화두에 대한 고민도 들어봤다.

사회적 의제를 학문적 화두로

먼저 2010년 출판계를 강타했던 ‘정의’와 정부가 표방한 ‘공정사회’는 학회에서도 관심사다. 한국철학회(회장 송인창 대전대 철학과)는 ‘공정한 사회와 정의’를 주제로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송인창 한국철학회장은 “2010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서 나타났듯이 대중들은 정의에 목말라있다”며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와 정의에 대해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사회에 대한 관심은 정책학 분야에서도 높다. 한국정책학회(회장 김헌민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행정학)는 올해 추계 학술대회 주제를 ‘정책학과 공정사회’로 잡았다. 김헌민 학회장은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공정사회가 무엇인지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다”며 “학문적으로도 이런 분야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고 실무정책차원에서 부각되고 있는 이슈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국정책학회는 올 한해 동안 학술대회를 통해 ‘녹색사회’, ‘안전사회’, ‘미래사회’를 정책학적 관점에서 조명할 계획이다.

한국사회학회(회장 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도 특별심포지엄 주제로 ‘공정사회의 주요 쟁점과 정책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사회학회는 전기와 후기 사회학대회 주제로 ‘사회통합’과 ‘소셜네트워킹’ 등을 다룰 예정이다. 박재묵 학회장은 “‘사회통합은 현 정부의 정책적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사회학의 오랜 연구 주제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제로 검토되고 있다”며 “‘소셜네트워킹’은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확장이 가져온 사회적 영향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사회 소통의 위기’는 한국언론학회(회장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가 주목한 주제다. 올해 기획과제로 ‘한국사회 소통의 위기’와 ‘한국사회 디지털 미디어’로 선정했다. 연구성과를 엮어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도 염두하고 있다. 양승목 학회장은 “최근 몇 년동안 한국사회 소통 위기에 이야기가 많았는데 학회차원에서 처방과 진단이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10월 28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의 주제는 ‘국경을 넘어서: 이주의 역사’로 정했다. 전국역사학대회는 역사학회(회장 김경현 고려대 사학과)를 비롯해 역사관련 학회 17개가 참여한다. 전국역사학대회는 2009년부터 역사학회와 대회 주관을 희망하는 학회가 3년 주기로 번갈아 주관하는 순환개최방식으로 열린다. 김경현 학회장은 “세계화 추세 속에 노동자의 이주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근대 이후 200~300년 동안에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유럽지역의 이주와 이민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문의 위기와 대중과 거리 좁히기

사회적인 관심사나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에 학회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배경에는 학문의 대중화라는 고민이 담겨있다. 한국헌법학회(회장 김학성 강원대 법학)는 오는 3~4월경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로스쿨 교육과 변호사 시험 등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인 사법시험 제도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는 것이다. 김학성 학회장은 “학회가 회원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는 곳은 아니”라며 “국민에게 와 닿는 이슈를 적극적으로 연구해 알리는 한편 정책이나 사업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주력하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철학회가 ‘공정한 사회와 정의’를 학술대회 주제로 선정한 것도 대중과 소통에 무게를 둔 결과다. 송인창 한국철학회장은 “지난해 11월에 늙어감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300명 가까이 참석했다”며 “학회가 너무 전문화되면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 ‘화학의 해’를 맞아 대한화학회(회장 김낙중 한양대 자연과학부 화학)은 대중에게 한발짝 다가가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1월 27일부터 이틀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화학의 해 선포식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다양한 행사가 연일 이어진다. 4월에는 전 세계 화학의 해 준비위원회(IYC)에서 정한 ‘우리 삶 그리고 우리미래, 화학과 함께’ 라는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올해 9월 26일 열리는 화학 엑스포는 화학분야 기업 홍보와 일반인에게 화학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김 회장은 “화학의 해를 맞아 청소년들이 화학에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다양한 행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에서 화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우리 학문의 정체성을 찾고 위상을 높이기 위한 진지한 모색도 이뤄진다. 한국정치학회(회장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정치학)는 한국정치학을 스스로 되짚어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박찬욱 학회장은 “그동안 한국정치학은 외국의 선진학문을 수입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며 “이제는 밖에서 배워오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로 향하는 주체적, 자아준거적 한국정치학을 정립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오는 8월에 예정된 한국정치세계학술대회는 ‘세계 속의 한국정치: 이론과 실제’를 주제로 열린다. 

한국사회학회는 올 한해 ‘사회학 혁신 사업’을 중점에 두고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21세기 사회학 혁신 특별위원회’ 구성을 의결했다. 사회학 혁신 특별위원회는 △사회학의 정체성 공고화 △사회학 커리큘럼 개선 △동일 분야 교수간 교류 확대를 통한 전공 교육 내용의 심화 △사회학 전공자들의 진로 확대 등을 주로 다루게 된다. 박재묵 학회장은 “사회학을 비롯한 기초사회과학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의 위상을 튼튼하게 다지고 사회학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위기감은 기초과학분야에서 더 심하다. 한국물리학회(회장 신성철 카이스트 물리학과)는 물리황폐화와 물리학의 위상 제고를 올해 중점 목표로 삼았다. 신성철 학회장은 “물리학은 기초과학 중에서도 위기의식이 가장 심하다”며 “현재 고등학교에서 물리 1을 선택하는 학생은 10%미만이고 물리 2까지 선택하는 학생은 5%가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학 발전을 위해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물리학 비전 2030’을 수립해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제시하겠다”라고 말했다.

대한수학회(회장 서동엽 카이스트 수리과학과)도 수학자들의 위상 제고를 위한 대책위원회 구성을 추진한다. 서동엽 학회장은 “많은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구조조정으로 수학자들의 직장이 없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각 대학들이 수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에게까지 승진평가기준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면서 불리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기초과학분야 세계대회 준비 한창

이런 위기감 속에서도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학회의 노력은 올해도 이어진다.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와 2012년 국제수학교육대회 유치에 성공한 대한수학회는 올 한해 동안 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서동엽  학회장은 “세계수학자대회와 국제수학교육대회의 예비행사로 한중, 한일 수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외국 사람들의 잔치가 끝나지 않도록 국내 수학자의 참여 속에 학문적으로 내실을 다질 수 있는 행사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계회을 밝혔다.

2012년 세계자성학회 유치에 성공한 한국물리학회도 한해 동안 대회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고분자학회는 오는 11월 제주에서 ‘12회 태평양 고분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한국균학회, 전력전자학회, 대한위암학회 등 20여개 학회가 올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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