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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유토피아, 그 상상력의 복원
삶의 유토피아, 그 상상력의 복원
  • 안치운 호서대· 연극평론가
  • 승인 2011.01.0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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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문화예술계 지도] 연극의 어귀

오늘날 한국연극은 느슨하고 가볍다. 이는 사유하지 않는 배우, 연출가, 극작가를 망라한 연극작가들의 좌절된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 2년 동안의 한국연극은 신중한 연극이 아니라 멈출 수 없어 그냥 작동되는 연극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다른 말로 하면 기계 같은 연극들이다.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의 지원금에 의해서만 공연이 성립되는 절차들이 연극작가들에게 모두 내면화돼 있는 탓이다. 한국연극은 출구없는 감옥과 같은 지원금에 사로잡혀 있다. 지원금 제도는 연극하는 재정적 부담을 줄여주기도 했지만, 연극에 관한 근원적인 성찰을 그만큼 제거했다. 바깥으로부터의 지원은 연극하는 삶을 마냥 게으르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연극의 자율성, 미적 가치의 공동체인 극단의 주체성은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이것들을 대체하는 것이 지원과 맞닿아 있는 기획(사)이다. 연극공연이 가장 많은 대학로에 가면 금세 알 수 있다. 많은 공연작품들이 연극작가들, 연극작업의 근원인 극단의 지속적인 미적 동력을 드러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미적 형식의 자율성이 낳은 산물이어야 한다. 공연이란 텍스트 안에서 연극작가들이 삶과 역사에 조응하는 역동적 자장일 터이다. 연극의 진실은 한정된 삶을 넘어서는 무한한 상상, 그 오류에 있는 법이다. 2011년에는 연극작가들에게 무엇보다도 연극의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깊은 심미적 성찰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병훈, 한태숙, 기국서, 이윤택, 박근형, 김태용과 같은 연출가들에 이어, 아니 이들보다 더 한, 그러니까 상상의 충격을 주는, 몸과 말의 자유로 현기증 나는 연극들을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의 전위에 있는 작가, 극단들의 혁신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연극작가, 연극단체의 동력을 위한 지원정책이다. 한국 사회의 일상성은 불안이 늘 반복된다는 데 있다. 한국연극은 그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한국연극은 단행본처럼 끝나고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늘 그렇고 그렇게 연장되는 장편과 같다. 맥락이 사라질 때, 삶과 연극은 지리멸렬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70년대 물었던 주제들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연극이 무엇이고, 무엇이 연극이 아닌가, 연극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한 물음보다는, 비정규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하는 이들의 삶에 관한 내용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연극지원정책은 정부에게 의무의 문제를, 지원금 수혜는 연극작가들에게 윤리의 문제를 안겨준다. 지원정책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너무나 빨리 변했고, 아직까지도 주밀한 연극지원정책은 없어 보인다.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연극과 연극작가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원·운영하는 시립, 도립, 국립 극단의 내부 사정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곳곳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공연축제들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내실은 볼품이 없다. 연극하는 이들의 삶의 토대가 불안할진대, 연극의 문법, 연극의 언어에 관한 성찰, 연극작가들에게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일은 신통치 않을 것이다. 지원받은 연극단체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받은 지원금이라는 격려에 대해 사의를 제대로 표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樂은 禮와 한 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원금을 관리하는 조직은 시대에 부응하는 지원제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갱신하는 지혜를, 지원금을 받는 연극단체들은 연극창조 작업을 사려 깊게 헤아리면서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극 지원, 연극창조는 말로만 하는 성찬이 아니라 역동적 실천이다.

피를 나눈 이들을 형제라고 한다면, 연극은 관객과 우선 그리고 주변 장르와 형제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꿈꾸는 사회로 귀결된다. 연극의 존재 방식은 극장에서 관객들과의 만남에 있을 터이다. 연극의 관객은 책을 읽는 독자 이상의 존재이고, 필연적 요소이다. 오늘날과 같은 우리 사회에 연극이 기여해야 하는 바는 모든 사회적 분리, 소외, 격차, 불평등, 억압 등을 극복하기 위한 헌신이다. 예술적 소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관계맺음으로 연극은 상징적인 사회적 제도를 낳는다. 그것이 확대되면, 그러니까 극장에서 연극작가들과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우리 삶과 사회를 꿈꿀 수 있게 된다.

인류가 연극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줄곧 무대 공간, 연극적 상상력을 삶의 유토피아라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삶과 사회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구조로서의 연극, 그것을 제도화하는 연극이 절실하다.

안치운 호서대· 연극평론가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서대 연극학과 교수다. 2006년 서울 국제 공연예술제 작품 심사위원,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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