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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웹의 만남 또는 새로움
시와 웹의 만남 또는 새로움
  • 방민호 서울대· 문학평론가
  • 승인 2011.01.03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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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문화예술계 지도] 문학, 변화의 목소리

문학계는 몇 년 동안 어떤 고착상태에 놓여 있었다. 올해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지만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주인공이 됐다. 또한 올해 국내 거대 출판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거액을 주고 사와서 히트상품으로 주조해 낸 일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 그럴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거리’가 이로써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011년 문학계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먼저 이 판에 박힌 문학 지형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잇따를 것이다.
대표적으로, 소설계는 황석영, 조정래 씨의 작품 발표로 거장이 귀환했다고 했지만, 『강남몽』은 표절시비에 휘말려 있고, 『허수아비 춤』은 날카로운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소설미학으로서는 의문을 사는 점이 있었다.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에 이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어딘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기획소설적인 요소가 다분해 보인다. 
한때 장편소설 대망론이 우세를 점한 듯 했지만 과연 기대에 부응할 만한 문제작이 나왔던 기억은 없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 가운데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는 박민규, 편혜영, 김애란 정도. 그러나 장편에서의 기량은 아직 미지수다.

창비, 문학동네, 문지사, 민음사 등의 문학출판 과두 지배 체제에 부속된 작가들, 비평가들에게서 어떤 새로운 흐름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한때, 홍기돈, 이명원, 고명철, 최강민 등의 비평가들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이 실험은 그렇다면 어떤 새로움으로 대체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남겼다.
2011년의 새로움은 무엇보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웹 환경의 새로운 혁명에 의해 변화될 문학 창작 수용 환경에 의해서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네이버나 다음의 장편소설 연재, 각각의 웹 매거진들의 활성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시 관련 사이트, 블로그들은 주요 출판사의 과두 지배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
특히 시와 웹의 만남은 더 이상 시가 창비 시리즈, 문지 시리즈의 서열화에 종속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직 시리즈 넘버로 상징되는 서열화는 여전하지만 이것이 시의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권력 파괴, 서열 파괴가 새로운 ‘출판’ 환경에 힘입어 가시화 될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 어플 형태로 제공되는 잡지가 없으리란 법이 없고, 새로운 참여를 원하는 자본이 새로운 기회를 바로 이 영역에서 얻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2011년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 그러나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에게서 출현할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 김남일의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이 은근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이 어느 드라마의 소품으로 사용된 때문이지만, 이 작품에 투여된 정신적 고뇌는 결코 간단치 않다. 제1회 중앙문학상 수상자인 임영태 같은 작가도 등단한 지 오래 됐지만 이렇다할 비평적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갑자기 새로운 조명을 받은 것이다. 중편 작가의 관록이 있는 최인석, 아랍 얘기를 쓰는 오수연, 유머와 해학에 비평정신을 가진 전성태, 세계시민 권리, 형이상학적 알레고리의 남한…… 이런 작가들은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도 다들 독특하고 귀하다.

시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할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한국문학의 자장이 넓고 깊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독창적 존재들의 재발견을 통해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거리’가 한결 좁혀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기대한다.    

방민호 서울대· 문학평론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현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2007년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태원 문학의 재인식』, 『파시즘 미학의 본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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