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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띠 교수들, 누가 있나]내성적이면서 완벽 추구 … 날선 비평 쏟아내더니 ‘토끼띠였네?’
[토끼띠 교수들, 누가 있나]내성적이면서 완벽 추구 … 날선 비평 쏟아내더니 ‘토끼띠였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2.31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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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7시 동트는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는가. 밤새 방아 찧던 옥토끼가 마지막 힘을 쏟아붓는 시간이다. 그래서인가. 옛 사람들은 옥토끼가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고해서 이때를 卯時라고 했단다. 십이지에 얽힌 설화가 여럿 있지만 ‘아침을 깨우는 동물’로 토끼를 꼽았다고 하니 옛 사람들의 토끼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만하다.

‘재미로 보는 띠별 운세’ 같은 가십에도 토끼띠에 관대한 해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설에 따르면, 토끼띠는 卯의 넉넉한 양기를 받아 원만한 기풍과 자애로운 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토끼띠에 태어난 사람은 느긋하고 온화한 기질을 타고났다. 일명 ‘호감형’이 많단다.

사회요직 꿰찬 ‘상냥하고 지적인 토끼들’

김남조 시인(숙명여대 명예교수)이 1927년생 토끼띠인 걸 보면 심심풀이로 찾아본 인터넷 운세가 영 꽝은 아닌가 보다. 김남조 시인은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고 사랑의 힘을 섬세하게 그려온 ‘사랑의 시인’으로, 여류시인의 계보를 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남조 시인이 사랑을 천착해 인간 생의 존재론적 탐구에 일생을 바쳤다면, 김용준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은 기초학문연구를 떠받치는 데 30년을 쏟았다. 김 이사장은 해직교수 출신으로 우연한 기회에 학술지원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1983년 ‘대우학술총서’가 세상의 빛을 본 이후 지난 연말까지 무려 600권 째를 발간한 주역이다.

김 이사장은 <교수신문>과 연말 인터뷰에서 “책의 성과는 후대가 평가하겠지만, 모든 학자들이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 이사장은 김남조 시인과 1927년 동갑내기 토끼띠다.

토끼띠에 태어난 사람은 학자적 기질을 타고 났다. 토끼띠는 내성적이면서 완벽성을 추구해 훌륭한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원시부터 근대까지 구비문학을 비롯, 한국 서사문학을 체계화한 『한국문학통사』(5권)의 저자 조동일 전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1939년생 토끼띠다. 조 교수는 재작년 여름, 계명대 석좌교수직을 끝으로 교수직을 물러났고 최근에는 산수화에 심취했다.


교육의 기본을 지키는 데 학문열정을 쏟아온 이홍우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도 조 교수와 동년배다. 1998년 저술한 『교육의 목적과 난점』은 ‘교육은 행동보다 관점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이 교수의 교육철학이 오롯이 반영돼 있다. 교육학의 교과서로 꼽힌다. 손홍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전 청주대 교수)과 이정민 서울대 명예교수(언어학과)도 1939년 토끼띠 동기들이다.
토끼띠는 상상력이 뛰어난 이상주의자이기도 하고 강한 의지를 지닌 냉정함도 갖추고 있다. 올해 환갑을 맞는 1951년생 토끼띠 교수들 중에는 유독 ‘이름난’ 사람이 많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와 김영나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그들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학자들이다. 性문학을 고수해 문제적 작가로 굴곡진 삶을 살아 온 마 교수는 최근 신작 단편집과 시집을 잇따라 내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낸 김 교수는 꾸준히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학문적 성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토끼띠가 상냥하고 지적인 태도로 존경받을 상을 지녔기 때문일까. 대학 총장들도 눈에 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 이효수 영남대 총장, 함인석 경북대 총장과 이달 총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김준영 성균관대 교수가 1951년생 토끼띠다.

주요 공직을 지내는 교수들도 환갑에 토끼의 해를 맞았다. 배규한 한국연구재단 사무총장(국민대)과 이병기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서울대)이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중앙대)도 이들과 같은 나이의 토끼띠다.

사회에 쓴소리를 곧잘 해 온 ‘행동파’ 교수들도 1951년생이 많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유팔무 한림대 교수(사회학과),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과), 이채언 전남대 교수(경제학과) 등이다. 남북문제 전문가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와 ‘합리적 보수’라는 별칭이 붙은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과)도 1951년생이다.

한국사회 가치논쟁 이끄는 ‘까칠한 토끼들’

조용하고 온순해 보이는 이면에 숨겨진 냉정함을 지닌 토끼띠 교수들은 1963년생이다.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던 1980년대 중·후반 석박사 과정을 보냈기 때문일까. 1963년생 토끼띠 교수들은 주로 문학이나 비평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공을 막론하고 한국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이들은 주로 ‘가치논쟁’에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홍성민 동아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경제학과) 등은 대학 안팎으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한 신재휴 서울시립대 교수(생활체육정보학과)와 지식생태학자로 알려진 유영만 한양대 교수(교육공학과)도 날선 비판의식을 견지하고 있다. 비평담론의 쇄신을 주장한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도 1963년생이다.

한편 1963년생 사회·문화계 인사로는 진중권 문화평론가(전 중앙대 교수)가 있다. 문학계에는 소설가 공지영 씨와 신경숙 씨가 1963년생 토끼띠 동갑내기다.
“토끼와 거북이를 육지에서만 경합케 만들고, 토끼를 만년 패배자로 매도해 버리는 것은 인간의 덜 떨어진 지능에 근거한 모함이요 횡포다. 신묘년에는 바다에서도 경합할 기회를 마련해 주도록 하라.”

얼마 전 소설가 이외수 씨가 트위터를 통해 제안한 ‘우화 비틀어 보기’의 한 대목이다. 토끼를 ‘만년 패배자’로 바라본 시선이 웃음을 자아낸다. 세태 풍자적인 요소가 짙게 묻어있어도, 글을 퍼나르는 사람이나 댓글을 다는 사람들 모두 웃을 수 있는 건 원작의 ‘꾀돌이’ 토끼가 밉지 않기 때문이다. 우화를 비틀어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토끼와 거북이는 모두가 승자다. 2011년 토끼띠 교수들에게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학문세계에서의 力走를 기대해도 될까. 괜시리 토끼띠가 부러워진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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