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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중국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
[문화비평] 중국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
  • 이영석 광주대·서양사
  • 승인 2010.12.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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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태 이후 중국의 동아시아정책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경제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도 중국 측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태도는 우리의 대중국 외교가 얼마나 근거 없는 환상에 의지하고 있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외교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중국 외교의 특징으로 알려졌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이 힘의 외교, 더 나아가 국가 이익을 적극 추구하는 대외정책을 표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력 신장과 관련된다. 올해만 하더라도 국민총생산액이 일본을 앞질렀고 도시화율도 50퍼센트를 넘어섰다고 한다. 미국과 함께 국제정치의 양강 구도를 굳힌 것도 인상적이다.

최근 중국 정치가들은 이전과 달리 국제문제에 관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을 향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다. 이 모두가 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을 선언한 지 한 세대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중국의 성장은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열풍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케이블방송을 통해 쯩허(鄭和)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드라마를 시청한 적이 있다. 이 드라마 또한 애국주의 열풍과 관련된 것이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기 훨씬 전에 쯩허는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해상 네트워크를 이룩했다. 쯩허의 항해 경로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여러 차례에 걸친 원정에서 그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군도, 남인도, 서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에 이르렀다. 근래에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도 원정대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있다.

쯩허의 원정에서 참으로 기이한 것은, 수십 년간 해상 네트워크를 개척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그가 황제의 귀환 명령 한 마디에 갑자기 철수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그러나 만일 쯩허의 해상 네트워크가 그 후에도 중국의 발전과 연결됐다면, 근대 세계사는 지금과 전혀 다른 전개과정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쯩허의 항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회한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지난 한 세대에 걸쳐 중국은 서구 지식인들의 예상과 달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길을 달려 왔다.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인 거대 중국의 산업화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실험이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특유의 수뇌부정치를 제도화했다. 겉으로는 공산당 정치국의 집단지도체제 형태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수재임용제도(meritocracy)이다. 즉 새로운 세대의 엘리트들이 지방정치에서 경력을 쌓고 여러 분야의 다면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고위 정치지도자로 선발되는 방식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소수에 의한 독재라고 할 수도 없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어쩌면 불가피하게 선택한 고육지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오랜 세월동안 다면평가과정을 거쳐 선발된 정치가나 고위관료는 그야말로 뛰어난 능력과 소양, 판단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선진중국의 건설이라는 강렬한 애국주의 정서로 무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과거 한 세기에 걸친 제국주의 수탈과 내전, 그리고 그 이후 냉전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우위를 확신한다.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의 제도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선거라는 이벤트를 통한 승리와 성공이 꼭 그에 합당한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해왔다. 선거과정에서 도덕적 품성과 아울러 세계를 조망하는 식견을 가진 정치가를 골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갈수록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치의 장에서 우리 정치가들이 중국의 고위지도자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결국 문제는 정치가 집단의 자세에 달려 있다. 선거에서 득표가 중요하지만, 그들이 일상의 삶에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능력을 신장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중국정치는 이전보다 더 탄탄하게 제도화됐다. 중국공산당은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시진핑을 선택했다. 새해에는 우리 정치가들이 도덕적 품성과 경륜 면에서 중국의 고위지도자들에 못지않은 능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이영석 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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