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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정년잡상
[원로칼럼] 정년잡상
  • 교수신문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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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13:53:37
이을형/전 숭실대 교수·법학

며칠 전 ‘교수신문’ 기자로부터 퇴임교수들이 쓰는 칼럼난에 원고의뢰를 받았다. 정년 되기까지의 그간 고민이나 후학들을 위한 조언 등의 내용을 담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니 그간 품고 있던 많은 생각을 담아내기에는 지면이 모자란 느낌이다. 극히 한정된 부분이라도 그간의 느낌을 허심탄회하게 ‘정년잡상’ 이라는 이름으로 몇 마디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 정년을 맞으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대학 강단에 처음 설 때보다도 몸과 마음이 오히려 더 건강하고 학문적으로도 더욱 원숙해 가는데, 정년이라는 틀에 얽매여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감이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정년의 개념을 ‘건강할 때까지’로 탄력있게 적용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 나라의 정년개념은 여전히 구태의연하고 획일적으로 정해진 나이까지라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 둘째는 몸담고 있는 대학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대학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아쉬움과 허전함이다. 셋째는 학문적인 기여도 앞으로는 제도권 밖에서 해야 하는 아쉬움과, 교직원과 제자들과도 접하는 기회가 적어지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이다. 이는 나뿐 아니라 퇴직을 앞둔 어느 누구라도 느끼는 것이리라 본다.
넷째는 학문 영역에 대한 아쉬움이다. 전공인 법학, 특히 노동법학에 있어서 법사회학의 이론체계의 확립을 지향하고 과학으로서의 노동법학을 수립하는 데는 현직에서 연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 나라 대다수 학자들이 실천적인 해석에 몰두하면서 간혹 법사회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해석에 종속돼, 노동판례들 중에서 몇 십 년이나 뒤진 판결이 간혹 나올 때마다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는 한다. 그것은 시민법의 법리로서 훈련된 법조인이 노동법학적 소양을 갖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해 나를 비롯한 노동법학자가 법사회학적 방법론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현직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더 큰 까닭은 이 때문이다. 좀 더 덧붙인다면 실정법뿐만 아니라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의 자주법규도 산법이라고 불려지는데, 우리 나라에서 이것을 부인하는 판례를 보며 더더욱 심란해지는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예컨대 1998. 3. 26 헌법재판소의 구노조법 제 46조 3의 위원판결).
노동법은 의회의 터널을 통하지 않고 노사가 자주적으로 만든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대해서 소위 법규범적 효력을 승인한(노조법 제33조, 근기법 제100조) 세계 공통의 법리이며, 시민법리에만 치우친 판결은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법학이 시민법이 갖는 허위의 가능성과 실태를 명백하게 내놓아 노동자 권리발전의 법칙을 체계화하려는 욕망을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의 법사회학적 분석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으로,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사실을 후학들이 유념해주기 바란다. 또한 후배 학자들이 세상과 더불어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연마하기를 바란다. 예의를 지킬 줄 알고, 덕을 쌓으며 더불어 사는 성품을 갖고, 서로에게 사랑과 우애가 넘치기를 바란다. 세계가 인정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면서 또한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이들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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