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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회구성체 논쟁에 참여한 철학자 이진경
[인터뷰] 사회구성체 논쟁에 참여한 철학자 이진경
  • 교수신문
  • 승인 200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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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1987년 ‘사회 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아침 刊), 일명 ‘사사방’이라는 책으로 사회구성체 논쟁에 참여, 이후 ‘주체사상 비판’(새길 刊, 1990), ‘한국사회와 변혁이론 연구’(민맥 刊, 1991) 등의 저작으로 논의의 ‘과학화’를 주도했다. 이후 근현대 철학 분야의 연구에 착수해서 ‘철학의 탈주’(새길 刊, 1995), ‘맑스주의와 근대성’(문화과학사 刊, 1997), 등의 저작을 꾸준히 내놓으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스스로 ‘우회의 길’을 택한 그에게 사회구성체 논쟁의 회고와 평가를 들어봤다.

△당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내게 된 배경과 동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저는 어느 입장을 선택하거나 지지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론적인 차원이나 운동적인 차원에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문제였기에, 제기된 논점이나 입론 자체를 원칙에 비춰 평가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분석의 요소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책에서 하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논쟁의 맥락이 단지 주변부론, 국독자론의 대립이 아니라, 1930년대 일본이나 중국, 한국에서 벌어졌던 식민지 사회 성격논쟁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점, 거기서 논점은 보편성을 강조하는 맑스주의와 특수성을 강조하는 입론의 대립이었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고, 거기서 특수성의 문제를 어떻게 보편적 원칙에 입각하여 포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략과 결부된 운동의 원칙을 확인하고 수립하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그 책의 입지점을 ‘방법론’이라는 차원에 위치짓고자 했던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사회구성체논쟁이 지금에 와서 볼때 어떤 점에서 한계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시의 입론을 ‘지금’ 본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회구성체 논쟁은 운동의 원칙과 전략에 관한 것이었고, 당시의 상황에 매우 긴밀하게 ‘긴박된’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에서야 취할 수 있는 잣대를 기준으로 들이대선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관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논쟁은 소모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주변부론과 국독자론의 ‘소박한’ 대립이 1930년대 사회성격논쟁으로 확대되었고, 1980년대 한국 사회에 대한 독자적인 규정으로,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연구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 그리고 운동의 향방을 이론적인 연구와 결합하려했던 시도 등은 매우 중요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 책의 헤겔적인 요소가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릴 듯합니다만, 그것은 단지 ‘지금’이기에 가능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에 대한 나름의 방법론적 입론이 좀더 구체적인 경제사적 연구와 결부되었다면 더 좋았을 듯 합니다만, 그것은 방법론적 차원을 벗어나는 과욕이었을 겁니다.

다른 한편 아마도 운동의 ‘전통’이 되었던 레닌풍의 스타일 때문이었겠지만, 논쟁의 어법이나 스타일이 필요 이상으로 격했고, 그것은 입론의 좀더 발전적인 종합의 기회를 제한했다는 점 또한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당시의 연구와 지금의 연구가 서로 연속성과 단절점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이겠습니까.

“단절점이 없다면 제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운동의 향방을 가늠하던 사회주의가 붕괴했고, 더불어 레닌주의 또한 근본적으로 시효만료된 상황에서 이전의 입론을 그대로 갖고 간다는 것은 아마도 이론적 ‘지조’를 지키는 태도로 보기 좋을진 모르겠지만, 그것은 운동의 향방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로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코 유물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태도일 겁니다.

레닌주의는 물론 맑스주의 자체를 근본에서 다시 사유하고 재구성하는 것, 저는 사회주의 붕괴로 요약되는 새로운 상황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맑스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책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맑스주의 자체를 다시 사유하려는 문제의식의 ‘중간결산’이었던 셈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사회구성체 논쟁은 단지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하는 결론을 둘러싼 논쟁만은 아니었습니다. 운동의 원칙, 사유의 원칙, 그리고 변혁의 향방을 둘러싼 논쟁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차라리 이런 변화된 상황 속에서 맑스주의 자체를 새로운 자원을 통해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구체적 입론의 변화를 포함하지만, 이전의 연구와 분명한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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