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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자 풀 제도 개선 모색 … 연차평가 간소화 하겠다”
“심사자 풀 제도 개선 모색 … 연차평가 간소화 하겠다”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11.22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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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인터뷰] 이한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지난 17일 한국연구재단 대전청사에서 만난 이 본부장은 눈코뜰새 없는 모습이었다. 내년 사업계획 수립을 위해 인문사회본부 전체 회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이 본부장은 인문사회분야 연구지원 설문조사와 연속기고에서 지적됐던 문제점에 대해 일부는 수긍했지만 대부분‘오해가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연구자의 평가업무 부담과 관련해서는 “평가 때문에 연구에 지장을 줄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연차평가를 단순화해 연구자들이 느끼는 평가부담을 줄이겠다”라고 말했다. 또 심사과정의 불공정성 의혹에 대해서는 “심사자 풀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라고 밝혔다.

 

△최근에 ‘연구기관 방문-Happy Visits'행사를 통해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현장에서 어떤 목소리가 많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획한 행사다. 다양한 목소리가 많다. 특히 평가를 줄여달라는 요구가 많다. 연차평가, 단계평가 때문에 연구에 지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엄격하게 선정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계획대로 연구를 못하는 곳이 나올 수 있다.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공지도 했다. 그래도 연구자입장에서는 중간에 탈락하면 안 되니까 신경이 쓰인다. 단계평가를 안할 수는 없다. 연차평가는 매번 같은 강도로 할 필요는 없다. 단순화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학술단체협의회 설문에서도 대형과제로 인해 행정업무가 늘어났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비롯해 대형연구보다는 개인연구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한국연구재단은 대형과제를 집단연구로 분류하는데, 중점연구소, 인문한국사업, 토대기초연구, SSK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사업에 투입되는 연구비가 적게는 1억에서 15억 원 에 이른다. 집단연구의 목표는 ‘인문사회분야의 인프라 구축’과 ‘젊은 학자 양성’ 두 가지다.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기초가 튼튼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문사회 분야의 인프라를 더 두텁게 깔아야 한다. 인프라가 튼튼해진 이후에는 개인연구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집단연구를 어떻게 평가하나.
“인문한국사업이 시작한지 3년밖에 안됐다. SSK사업도 올해 시작했다. 인문사회분야에서 집단연구를 시작한 게 얼마 안됐다. 인문한국사업은 38개 연구소에 지원하는데 여기에 관여하는 연구인력이 500명 정도다. 단정적으로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굉장히 열심히 하고 전망도 밝다.”

△심사과정의 불공정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인문사회분야 지원사업의 선정률이 34.4% 정도다. 신청자 3명 가운데 두 명꼴로 떨어진다. 선정률이 낮아 선정율을 높일 필요는 있다. 떨어진 사람은 불만이 있을 것이다. 사업에 탈락한 연구자들도 자신이 제일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한국연구재단의 공정성은 세계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심사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런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누가 심사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심사자의 수준을 어떻게 높일까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수학자지원사업은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에게 주는 연구비인데, 너무 젊은 연구자가 심사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사업별로 심사자를 등급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심사자 풀을 엄격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지금도 심사자 풀을 구성하는 기준이 있는데, 업적의 우수성, 평판 등이다. 심사자의 최소기준을 더욱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앞서 심사를 꺼리는 학계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경험에 비춰봐도 학회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을 평가할만한 평가자를 찾는 것도 힘들다. 귀찮다는 인식이 학계에 팽배하다. 심사를 피하는 경우엔 봉사개념으로 심사에 임해야 한다고 설득하곤 했다. 연구자들이 심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심사의 질도 높아진다. 심사를 거절하는 연구자가 많을수록 해당 분야에 맞아떨어지는 심사를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불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학문후속세대의 고용문제도 인문사회분야 지원의 문제로 꼽혔다.
“강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비는 내년부터 지원할 계획이다. 전업강사들이 연구주제를 자유롭게 정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신규 사업을 마련했다. 선별지원이 아니라 모든 시간강사에게 연구비를 달라는 요구도 있다. 그런데 한국연구재단은 강사 문제를 해결하는 곳은 아니지 않느냐.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이니까 잘 키워야 할 필요성도 있지만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보다 경쟁력있는 연구자들에게 지원해 우수한 결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목적이 더 크다.”

△여러 가지 지적과 제언이 나왔는데, 내년이나 향후 사업에 반영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예산에 바로 반영하는 방법도 있고, 사업을 운영하면서 반영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일단 내년 예산 증액 폭이 꽤 크다. 이공계와 비교하면 적지만 절대액수는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그리고 현장의 의견을 당장 내년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시간상 어려움이 있다. 인문사회분야 연구비 예산은 3~4년 전만해도 절대적으로 열악했다. 당시에는 ‘누구에게 나눠주느냐’는 선정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다. 이제는 예산 규모도 커지고, 대형 사업도 생기면서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가 최대 화두다. 평가가 번거롭다는 불만도 많지만 평가는 갈수록 엄격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연구 성과에 대해 관여를 안했지만 요구를 해도 내놓을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예산 규모도 커지고 그에 맞는 연구 성과를 요구할 때가 됐다. 그만큼 평가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서구학문을 도입한 지 100여년이 됐다. 이제는 단순하게 서구 선진사회의 이론들을 소개하는 단계는 넘어서야 한다. 학문 세계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브랜드화를 추진해야 한다. 인문사회분야도 연구결실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인문사회분야는 눈에 보이는 연구성과를 도출하기가 어려운데.
쉽게 이야기 하면 인문사회분야에서도 노벨상을 수상하는 연구자가 나와야 한다. 우리만의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구결과가 나오면 우리도 대폭적으로 뒷받침할 예정이다. 집단연구의 경우에는 국제무대에 내놓을 만한 논문을 몇 편씩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도 질적평가로 전환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등재후보지에 최근 5년간 논문을 얼마나 실었는지를 따졌다. 연구재단등재지, 등재후보지가 너무 많다. 등재지를 등급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다. 예컨대 철학분야에서도 상위 10위에 드는 학술지가 있다. 상위 학술지에 논문 한편을 실었다면 업적을 인정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상위 5개 학술지를 만들어 차별화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어렵다면 현재 마련된 KCI시스템과 연계해 질적인 평가를 유도할 수 있다.”

△여전히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간섭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연구비 지원을 받으면서 간섭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순된다. 스스로도 여기에 오기 전에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돈은 ‘타고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연구비는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다. 연구비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원을 받았으면 여기에 상응하는 보답을 반드시 해야 한다. 평가와 관리를 엄격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불평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연구비는 연구에 대한 의욕이 넘치고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지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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