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3:15 (금)
문제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다
문제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0.11.01 1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에 대해 한 말을 빌려 자본주의에 관한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다는 것이지만. 내가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것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이지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가 아니다.

시장은 무수한 경제 주체들이 수행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경제 행위들을 상호 조정하는 데에 특히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시장이 메커니즘 혹은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은 다른 기계와 마찬가지로 세심한 규제와 조정을 필요로 한다. 같은 자동차라도 취객이 운전하면 살인 무기가 되지만 응급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면 사람의 목숨을 구하듯이, 시장은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 또 성능이 개선된 브레이크를 장착하거나 더 호율적인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자동차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듯이, 시장도 참여자들의 태도와 동기 그리고 시장을 지배하는 규정을 적절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더 잘 돌아갈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를 운용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이런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중에서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경제 성장을 늦추고, 불평등과 불안정을 고조시켰으며, (때로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 위기를 더욱 빈번하게 초래했다.

모두에게 맞는 하나의 경제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스칸디나비아식 자본주의와 크게 다르고, 스칸디나비아식 자본주의는 독일식 혹은 프랑스식 자본주의와 다르다. 일본식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미국과 같은 심한 불평등을 용납할 수 없는 나라 중에도 어떤 나라는 스웨덴처럼 높은 세율의 누진 소득세로 재정을 마련해 복지 국가를 건설할 수도 있고, 혹은 일본과 같이 대형 마트 개점을 까다롭게 하는 등 돈 벌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 이 두 방법 중 어느 것이 객관적으로 낫다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비록 내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식 대안이 일본식 대안보다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하되 좋이 않은 결과를 가져온 자유 시장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서 눈을 떠,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물론 이 다른 종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목표, 가치, 믿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저자 장하준 교수는 1990년 이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23가지 통념을 비판하면서 자유 시장주의를 넘어 더 나은 자본주의를 지향하자고 제안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