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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아니었다면 세계를 구분하는 표상은 달라졌을까
유럽이 아니었다면 세계를 구분하는 표상은 달라졌을까
  • 이대희 부경대·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0.11.01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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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지음, 『대륙의 발명』(이대희·류지석 옮김, 에코리브르, 2010.8)

극동(Far East)이라는 지명은 동으로 팽창하는 유럽이 동아시아 지역을 근동이나 중동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이러한 지명에는 유럽의 특수한 지리적, 역사적 경험이 반영돼 있고, 이러한 지명을 통해 중심과 주변이 설정되고 주변은 부단히 객체화된다. 지명을 포함한 지리는 흔히 ‘자연적(natural)’이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로 간주된다. 그러나 극동이라는 지명에서 보듯 지리는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명’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이름 하나하나를 정확히 대지 못하면 상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오대양 육대주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륙의 발명』에서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파리7대학 교수는 대륙을 주제로 삼아 지리에 투영된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속셈까지-그러니까 정치까지-치밀하게 고증해서 유럽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했음을, 그리고 그러한 발명을 통해 세계를 지리적으로 어떻게 나눴는지, 다시 말하면 세계를 어떻게 창조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유럽의 발명품, 대륙과 세계의 분할

구세계 대륙들 이름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지리에 기원을 두고 있고, 고대 그리스의 유산이 중세 시대에 기독교를 만나서 구세계를 삼분하는 발명이 이뤄졌다. 그리고 지리상의 대발견으로 이러한 발명이 전지구적인 범위로 확장되는 순간, 즉 세계화가 시작되는 16세기가 유럽인들이 세계의 구분을 정형화하면서 자신들을 ‘발견된’ 사람들과 구별하고 세계의 중심으로 등극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세계의 지배는 세계관의 지배를 수반하므로, 이후 유럽인들은 지리학은 물론 종교와 예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자신들의 세계관을 다른 문명권에 강요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그러나 현대의 고고학과 유전학에 의해 용도폐기로 판정난 4대륙에 사는 4색의 인종이다. 어원이 Ocean이므로 대륙과는 반대의 의미를 지닌 오세아니아가 19세기에 대륙으로 인정되는 데도 고대의 아틀란티스 신화와 대척점이라는 중세 시대의 과학적 상상 즉 유럽의 문화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 즉 대륙과 세계의 분할은 전적으로 유럽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만일 다른 문명권에서 세계화를 주도했다면 세계를 구분하는 표상이 달라졌을까. 거의 모든 문명권이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저자는 대표적으로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구세계를 나누는 경계가 이동됐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물론 그러한 세계에서는 중국이 유럽을 대신해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겠지만.

지리역사 또는 역사지리를 전공하고 세계화를 지역사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지극히 시사적이고 정치적이다. 책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신청으로 야기된 유럽의 지리적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에서 시작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고증이 단지 지적 호기심의 발로로 골동품 가게를 장식하는 진열품이 아니라 현재의 뜨거운 문제를 규명하는 데 유용한 작업임을 선언하는 저자의 전략일 것이다.

예술과 꿈, 지리학의 흥미로운 접근법

책의 결론 역시 정치경제적인 변동의 결과로 흔들리는 대륙의 지위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남과 북’처럼 대륙을 대신해서 세계를 부국과 빈국으로 분류하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점점 더 동아시아나 아시아-태평양으로 분류돼서 오세아니아는 해체되고 있는 중이다. 저자의 처방은 하나의 세계 구분이 아니라 각 사회가 자신에게 적절한 세계의 구분을 채택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대륙은 여전히 예술과 꿈을 간직한 채 그 지위가 지속될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저자가 언급한 예술과 꿈은 이 책의 흥미로운 접근 방법을 암시한다. 사실 유럽이 세계화의 주역이었으므로 세계가 유럽 중심으로 구분됐다는 것은 쉽게 상정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를 고증하기 위해 저자가 활용한 자료를 보면 매우 흥미롭고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활용한 자료는 문헌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지리학자답게 선사시대의 ‘베돌리나 지도’로부터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현대의 지도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조선시대의 강리도와 같은 다양한 지도를 등장시킨다. 게다가 책에 등장하는 지도들은 대부분 매우 아름다워서 미술품을 연상시킨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진짜 미술품이다.유럽중심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다른 대륙을 타자화하는 과정이자 그 결과물로 저자는 회화, 벽화, 조각, 모자이크 심지어 영화 포스터 등 많은 미술품을 분석하고 있어서 이 책을 ‘도상학 연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많은 지도와 미술품 도판들로 장식돼 있는 이 책은 마치 하나의 화집처럼 감상할 수 있다.

전문학술서와 교양서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우리의 풍토에서 이 책은 인문교양서에 가깝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꼼꼼하게 주석을 붙이지도 않았고 학술서가 요구하는 엄밀한 논리적 구조를 갖추지도 않았다. 게다가 많은 도판으로 장식돼 있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이론보다는 경험적 사례 연구가 학문적 주류를 이루는 유럽 대륙의 전통, 특히 이 책의 영역인 역사학과 지리학의 전통에서 볼 때 그리고 저자가 동원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고려하면 이 책을 쉽게 교양서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리고 이론이 없다고 저자의 관점 또한 부재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푸코식의 계보학을 따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관점에 서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전문학술서와 교양서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유럽의 지적 전통과 저술 전통에 충실하다.

번역은 또 하나의 창조라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유럽이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창조했듯이 옮긴이 중심의 창조가 될까봐 노심초사한 경우가 이번의 번역이다. 저자는 고금과 동서를 종횡무진할 뿐만 아니라 이미 언급한 것처럼 역사와 지리는 물론 종교와 예술 그리고 지구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을 현란하게 뽐내고 있어서 해당 분야가 등장할 때마다 짧게나마 새로이 공부를 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예가 대륙표류설과 판구조론이다. 이런 벼락치기 공부로 각 분야를 완전히 소화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번역이 지은이의 의도와 어긋나는 엉뚱한 창작이 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대희 부경대·정치외교학과

필자는 프랑스 파리 7대학교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는 『정치학으로의 산책』(공저), 『세계지역의 정치』(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의지, 의무,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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