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8:45 (목)
세상살이 예사롭지 않네! … 살벌한 생존경쟁의 흔적
세상살이 예사롭지 않네! … 살벌한 생존경쟁의 흔적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11.01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1> 식물의 자기방어물질

농사는 과학이요 예술이라 했으며, 養樹得養人之術이라고, 나무를 키워보면 거기서 가르치는 법을 터득한다고 한다. 사람을 ‘교육적 동물’이라 했던가. 농사나 나무 키우기는 한 마디로 기다림이다. 닦달한다고 되지 않는 것은 자식을 기르고 교육시키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텃밭에서 푸성귀들의 다툼과 생명력을 하루도 빼지 않고 바라보았기에 이런 글을 쓴다 생각하니 그것들이 나의 스승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덕택에 흙냄새 실컷 맡고 흙살 뒤집어쓰면서 心性情까지 부드러워지고 깨끗해졌다. 게다가 싱싱한 푸성귀까지 뜯어먹으니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닌가.

밭고랑에 씨앗은 아무나 뿌리나. 해 보지 않은 일은 어느 것이나 언제나 서툴고 어렵다. 소밀(성김과 빽빽함)을 맞추기 힘드니 배거나 성글게 뿌리기 일쑤다. 어느 아주머니 말처럼, “봄채소는 큰 놈부터 솎아먹고 가을 것은 잔 놈을 먼저 빼먹는다.”는데, 때가 되면 띄엄띄엄 솎아내어 끼리끼리 싸움박질을 못하게 해준다.

무 배추가 무슨 아등바등 다툼질을 한단 말인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쭈그리고 앉아 무골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뿌리는 물과 거름싸움, 이파리는 제 먼저 햇빛 받을 넓은 터 잡겠다고 피 터지는 쌈질을 한다. 촘촘하게 심어놓은 무를 그대로 두면 튼실한 놈이 부실한 것들을 짓눌러버리고 몇 놈만 우쭐 득세한다. 동식물이 다 먹이와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생존경쟁이 불길 같으니 약육강식 그 자체다. 동물만 해도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 넉넉하게 먹이를 얻고, 따라서 여러 짝과 짝짓기를 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사람도 그들과 손톱 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매…….

식물이나 세균, 조류, 곰팡이는 하나같이 나름대로 다른 것(種)에 해로운 물질을 분비해 그것들의 생장, 발생, 생존을 못 하게구니 이를 他感作用이라하고, 영어로는 알레로패시(allelopathy, allele는 '서로(mutual)', pathy는 ‘고통(harm)'을 뜻함)라 부르며, 그런 화학물질을 타감물질(allelopathic substance)이라한다. 공격적인 외국식물 따위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듯이 아주 모질고 독한 타감물질을 분비해 재래종을 내쫓는 것도 그 한 예다.

길섶을 지나면서 소나무 숲을 내려다보면 소나무 밑에는 이상하게도 듬성듬성 푸나무 몇 포기를 빼고는 다른 식물이 없을뿐더러 그 많은 솔 씨가 떨어졌으나 애솔 하나 보이지 않는다. 호기심이 없으면 자연(현상)을 건성으로 보기 십상이요, “자연은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만 대답을 한다.”고 하니…….그리고 “거목 밑에 잔솔 못 자란다”는 말은 속된 말로 “잘 나가는 애비 좋은 자식 두기 걸렀다”는 말이지만, 실제로 어미나무뿌리나 떨어진 솔잎이 갈로타닌(gallotannin)이라는 독성물질을 분비해 어린 애송을 못 자라게 한다. 그럼 그 母樹를 베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타감물질이 없어지고 그늘이 사라진 탓에 이내 다투어 싹을 틔우고(솔 씨는 센 빛을 받아야 발아함), 가만히 두면 숱하게 많은 고만고만한 애송목이 길차게 자라지만 결국엔 개중에 한 두 그루만 큰 나무가 된다.

그리고 울창한 숲에서 산림욕을 하면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져있는 피톤치드(phytoncide, phyton은 ‘식물’, cide는 ‘죽인다’는 뜻임)라는 화학물질 탓에 몸에 그지없이 좋다고 한다. 그것은 숲의 나무가 뿜어낸 것이며, 각종 곰팡이나 세균을 죽이는 항균물질 즉, 타감물질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함이라 한다.

또 특히 짙은 냄새를 풍기는 제라늄(geranium)이나 허브(herb,‘식물’이란 뜻임)를 가만히 두면 내음이 별로 나지 않는데 손으로 툭 치거나 잎사귀를 문질러보면 불현듯 진한 내음을 풍기니 그 또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내 놓는 타감물질이다. 뿐만 아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잔디밭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야멸친 토끼풀이나 민들레가 그 드센 잔디와 거침없이 火藥, 타감물질을 쏟아 부으면서 삶터를 넓혀간다. 식물도 여간내기들이 아니라서 겉으론 평화스러워 보이나 안으로는 이렇게 똥줄 타는 투쟁을 하고 있다. 정작 세상살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그들에게서 배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