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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 이영 교수 논문 ‘여성과 국가의 투명성’
[화제] : 이영 교수 논문 ‘여성과 국가의 투명성’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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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14 18:31:48
자신은 부패와 친하지 않다고 공언해온 대통령이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들이, 자신이 그토록 멀어지고자 했던 부패와 관련되어 우수수 터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데, 국민들 대부분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이다. 돌아보면 부패란, 야음을 틈타 오고가는 사과상자나 고급아파트 특혜분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사가 정신없는 틈을 타서 요금을 안내고 버스를 탄다든지, 지하철역에 떨어져있는 만원짜리를 슬쩍 주워 챙기는 일도 엄연한 부패다. 주차하다가 옆 차를 건드려 흠집을 내고서 보는 눈이 없다고 그냥 가는 것도 부패다.
이렇듯, 삶에 널린 ‘우리 안의 부패’들은 살갗처럼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부패공화국이라는 이 치욕스러운 이름을 벗어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방법은 있다. 여성 정치인을 많이 뽑고, 여성 경찰에만 법규위반 법칙금 부과 권한을 주고, 여성 사업가에게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주는 것이다.

부패 방지 위한 멕시코와 페루의 ‘결단’

지난달 23일 한국여성개발원이 개원 19주년을 맞아 주최한 ‘여성과 국가경쟁력’ 심포지엄에서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학과)가 발표한 ‘여성과 국가의 투명성’이라는 논문에 담긴 핵심 내용은 바로 ‘여성이 참여하면 부패가 줄어든다’는 것. 이 교수가 공동저자로 참여해 작성한 영문 논문 “성과 부패(Gender and Corruption)”를 요약 재구성하고 한국관련 부분을 보완한 논문의 초점은 여성의 사회참여 진작정책에 맞춰 있으며, 부패에 있어서 남녀간 성별차이가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부패에 대한 태도에 있어 성별차이’, ‘부패행위(뇌물제공)에 있어서 성별차이’, ‘거시데이타로 본 부패에 있어 성별차이’, ‘국가투명도와 경제성장’ 등 4개 분야와 서론과 종합해석 등 6장으로 구성된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성의 사회참여와 부패 정도를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문에 사용된 자료는 국제조사기관인 월드 밸류 서베이와 세계은행의 반부패설문조사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국가별 횡단 분석을 통해 여성정치 참여와 국가 투명도까지 닿고 있다.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부패에 대한 태도에 있어 성별차이’ 항목이다. 바탕 자료의 시기가 20년 전, 10년 전이라는 사실이 아쉬운 점인데, 월드 밸류 서베이의 설문은 1981년에 17개 국가, 1990년∼91년 41개 국가로 대폭 넓어져서 두 차례 실시됐다. 세세한 항목은 모두 일상 생활과 관련된 부패지수를 묻는 것이어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주은 돈을 갖는 행위’ 항목에서는 남성의 43.9%, 여성의 51.6%가 ‘용납될 수 없다’라고 답하고 있다. ‘세금을 회피하는 행위’ 항목에서도 차이가 큰데, 남성의 54.4%, 여성의 61.5%가 용납될 수 없다고 답하고 있고, ‘음주운전’ 항목에서는 남성의 74.2%, 여성의 83.4%가 용납될 수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남성경관들의 법규위반범칙금 부과 권환을 박탈하고 여성경관들에게만 권한을 주고, 페루의 리마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실시한 뒤에 관련 부패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조사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생물학적 차이 아닌 사회적 차이에 기반

‘부패행위에 있어서 성별차이’ 항목에서는 여성 기업가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의 뇌물제공 빈도가 낮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이고 있다. 1997년 이후 세계은행이 조사를 벌인 나라로는 구소련의 조지아, 에쿠아도르, 태국, 인도네시아, 베닌 등 세계 여러나라이다.
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는 기업등록, 전기, 조세, 관세, 교통경찰, 건축 허가권 등 18가지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해 정부부처 접촉빈도, 뇌물 공여빈도, 뇌물 액수에 대한 질문이 포함돼 있다. 조사를 통해 여성기업가가 운영하는 기업의 뇌물공여빈도는 총 접촉빈도의 4.6%, 남성기업가가 운영하는 기업의 뇌물공여 빈도는 12.5%로 나타나고 있다.
6·13 지방 선거를 한달 남겨둔 한국의 현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의 정치참여와 투명성의 상관관계. 이 교수는 논문을 통해 “특정국가 국회와 정부 등에 진출한 여성비율이 10% 증가하면, 세계은행과 세계투명성기구가 그 국가에 부가한 청렴도 지수는 0.25 포인트 증가하고, 부패지수는 1.2 포인트 개선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논문 서론에서 성별차이의 주장이 쉽게 오해될 수 있음을 전제하면서, “보고서의 실증 관계가 남녀간에 근본적이고 영구적이며 생태적인 차이를 보인 것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보고서에서 밝히는 성별차이는 생물학적 차이뿐 아니라 “사회화 과정의 차이, 부패네트워크에 대한 접근도 차이, 뇌물수수 방법에 대한 지식 차이 등 여러 다른 요인에 근거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부패에 있어서 성별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외에도, “정치적 자유와 부패간의 강한 연관관계와 부패행위의 몇몇 공공서비스 분야의 집중 현상이 관찰되었다”라는 언급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체적 사례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조사가 되지 않은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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