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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전망 지닌 개인 연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장기적 전망 지닌 개인 연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김원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정치학
  • 승인 2010.10.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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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단협·교수신문 ‘학술정책 진단’연속기고 ③연구재단의 사업구성 문제

올해 인문사회과학 연구지원은 10년 전에 비해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2010년 교과부 인문사회분야 예산은 전년도 1천901억 원에서 2천141억 원으로 증액됐다. 그간 인문사회과학 연구비 지원은 단기간에 새로운 지원 분야를 개발해서 지원해온 성과도 존재하지만, 단기적이고 현실적 요구에 따른 사업유형별 구성으로 여러 문제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과연 현재 인문사회과학연구 대부분이 의존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의 연구지원 사업은 수요자인 연구자에게 적절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일까.


대형지원 사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연구사업 구성이 단기성과 중심으로 돼 있다는 것, 인문한국 사업 이후 많은 대형프로젝트가 발주돼 특정주제 연구자들의 쏠림 현상으로 학문연구의 다양성이 약화된 점, 주기별 프로젝트 기획서 작성에 연구자들이 시간을 투여하는 ‘과도한 경쟁’ 체제라는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 사업 자체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현실적 근거는 명확하다. 토대, 기초, 융합 등 인문한국사업 이후 확대되는 공동연구 등을 둘러싼 단순 경쟁으로 인해 사회나 학계에서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과제에 대한 전략적 고려 부족, 유사 사업간의 변별성 부족, 3~5년 단기 사업위주로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중장기적인 안정적인 연구자 지원책 부재(연구공간 부재 포함), 유사한 연구계획서가 제출되는 중복지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공모과제 단골 ‘융합연구’의 그늘

연구재단의 연구과제 공모를 보면 대부분 과제에 ‘융합연구과제 우대’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연구재단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학제적 융합을 통한 창조적 신지식 창출을 모토로 내세웠다. 하지만 융합이란 연구재단 키워드는 연구다양성에서 시작했지만 오히려 다양성보다는 중복지원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른바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공동연구의 기준, 특히 연구절차 및 목표가 상이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상은 부재한 상태다. 일본의 경우 2001~2005년에 걸쳐 ‘인문, 사회과학특별위원회’에서 ‘인문, 사회과학 진흥에 관하여-21세기에 기대되는 역할에 부응하기 위한 당면 진흥 방안’이라는 장기적이고 융합적인 분야 간 협동에 대한 현황과 보고서에 입각해 정책이 진행됐듯이, 중요한 것은 선언적인 융합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함이 아닌, 무엇이 한국적 현실에서 융합연구가 방법론적, 내용적으로 가능한지 면밀한 사전 조사와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앞서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전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인문사회과학 일반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할 독자 기구 설치와 이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의 마련이다. 먼저 미국이나 영국 등과 유사한 인문, 사회과학 지원법을 법제화시켜야 한다. 미국의 ‘인문예술국가기금법’ 등 여러가지 사례를 참조해 안정적인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인적, 재정적 지원의 안정화를 기하는 동시에 창의성, 자율성, 민주주의 및 사상의 자유 등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연구재단과 같은 사업 프로그램 위주의 연구지원기구가 아닌, 인문사회과학분야의 학문정책을 수립, 법제화할 수 있는 정부로부터 자율적인 ‘한국인문사회과학연구위원회’가 필요하다. 이 위원회를 통해 인문사회과학 발전 및 지원 마스터 플랜 입안 등 커다란 학문정책 및 지원 방향을 결정하고 대학, 학회 등 학계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전국인문사회과학위원회’를 구성, 장기적인 인문사회과학 연구가 지행해야 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론화를 모색하는 한편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연구 및 사전 기획 등이 필요한 토대/기초 학문, 국내외 연구 흐름 등을 공정하게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 중심의 지원 체제로 재편

셋째, 현재 사업별로 구성된 연구지원 구성은 수요자인 연구자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재편돼야 한다. 그 기본 방향은 두 가지다. 한 방향은 그 성격이 겹치며 문제점이 지적돼온 대형·장기 연구지원의 최소화다. 기초연구, 토대연구, 융합연구, 인문한국 등 대형화된 연구들은 ‘한국인문사회과학연구위원회’의 사전 연구를 통해 연구 아젠다를 전략적으로 설정, 안정적인 연구 역량, 기반이 마련된 대학, 기관, 학회 등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전략적 단위에서 연구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또 하나의 방향은 장기 개인연구의 대폭 확대다. 연구자들은 일회성 프로젝트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법적, 제도의 창설을 선호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교수제도’ 등 명칭으로 정부-대학이 공동운영하는 제도를 법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선발된 개인연구자는 대학 내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며 10년(3년+3년+4년) 간 정식교원으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도록 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예산의 확충을 통해 선정율을 50%대로 상향시켜야 한다. 다만 단계별로 개인연구자의 교육과 강의, 연구업적에 대한 평가를 통해 최소한 기준을 마련하도록 한다.

넷째, 연구지원 방향은 저서와 역서에 대한 지원 및 평가 폭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간 SCI, 등재지 등을 중심으로 한 연구결과물 지원은 장기적이고 개인적 연구 성향이 강한 수준 높은 저서/번역서가 약화되고 등재지 논문의 수적 확산을 가져왔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수저서 지원’(사전/사후), ‘우수번역서 지원’ 등 다양한 저술의 지원 장려가 필요하다.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연구자에 대한 연구지원에서 으뜸가는 가치는 ‘연구의 독립성’이란 점이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측이 효율성, 관리적인 측면을 강화할수록 연구(자)의 독립성은 훼손되며 실험적이고 창조적 연구보다는 연구비 배분자의 선호도에 맞춰지기 쉽다. 융합적이며 창조적 연구는 기존 가설과 학설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통한 실험적 연구를 통해 그 가능성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필수 조건은 연구자 중심으로 연구사업의 전면적 재편이며 그 안에 깔린 가치는 다른 목적성이나 필요성으로부터 결코 훼손돼서는 안 되는 연구자의 독립성이다.

김원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정치학

필자는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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