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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학술적 동기’에서 연구에 참여 … 공동연구·대형과제 실패
‘비학술적 동기’에서 연구에 참여 … 공동연구·대형과제 실패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9.25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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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단체협의회· <교수신문> ‘인문사회과학 학술정책’ 공동 설문조사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정책이 실패에 가깝다는 연구자들의 진단은 연구지원 규모와 심사, 연구자들의 고용 불안정 등 곳곳에서 드러났다.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조돈문 가톨릭대)와 <교수신문>이 대학의 전임· 비전임 교수 349명(회신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현 학술정책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자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51.1%로 긍정적인 평가(26.4%)에 비해 두 배에 달했다. 특히 학문 후속세대의 고용 불안정 문제에는 응답자 중 87.6%가 동의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정부의 학술정책 실패는 연구지원 규모의 대형화와 연구과제 심사과정 평가에서도 잘 나타났다. 공동연구 및 대형연구 사업은 연구 주제와 전공 불일치, 연구자 개인의 연구 자율성 제약으로 인해 내실 있는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연구자의 연구 역량 개발에도 실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평가점수를 의식한 전시형 학술행사 남발로 연구비 규모에 걸맞은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한국연구재단의 공동 연구과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질적 평가 대신 양적 평가가 중심’(80.4%)이 돼 실질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결과 보고서 분량 등 ‘연구결과의 평가에 형식적인 요소가 많이 고려된다’(80.1%)는 지적이 제기됐다.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한 전시형 학술행사가 지나치다’(77.2%), ‘연구 결과물은 공동연구의 성과라기보다 개별 연구원들의 성과를 모아 놓은 것’(72.3%)이란 지적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을 나타냈다. ‘전임 교수의 연구 외 업무가 과중하다’(55.7%), ‘연구주제와 참여 연구원의 전공이 맞지 않는다’(44.7%)는 의견도 이어졌다.

72.3% “공동연구,  개별성과에 불과”

한국연구재단이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학술활동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통제 기구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응답자 중 68%의 연구자들은 학술활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연구과제 심사 및 선정 과정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관철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난해 중앙대 독일연구소와 상지대 등 3개 대학의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이 잇따라 HK지원사업 해외지역연구 분야와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 최종심사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자들은 순수한 학술적 동기보다 비학술적 동기로 연구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경향이 높았다. 연구과제 참여 동기를 연구주제에 대한 관심으로 참여하는 ‘학술적 동기’와 생계비 획득, 타인의 일자리 마련, 연구업적 평가 대비, 학교 측 요구 등 ‘비학술적 동기’로 구분해 보면, 자유로운 순수 학술적 동기에서 참여하는 비율은 12.5%에 불과했다. 반면 순수· 비학술적 동기는 38.5%로서 순수· 학술적 동기의 세 배가 넘었고, 학술적· 비학술적 동기가 동시에 작용한 사례는 44.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구자들은 비전임 교원들의 연구· 교육 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고용불안정’(93.3%)과 ‘교원지위 불안정’(91.3%)으로 인해 연구가 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데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동의했다. ‘연구관심과 맞지 않은 연구 프로젝트’(80.1%)에 참여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96.2%), ‘공동과제 보다 개인 과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84.1%)는 의견이 제기됐다.

정부가 학술정책을 통해 인문· 사회과학의 위기를 타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되면서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인식도 컸다. 한국연구재단 출범 이후 인문· 사회과학 학술정책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은 55.9%에 달했고, 긍정적인 평가는 6.3%에 불과했다.

 

“연구재단 통합이후 학술정책 더 나빠져”

연구자들은 ‘과거보다 인문사회과학 분야 지원이 취약해 졌다’(68.8%)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자연과학 중심으로 운영돼 과거보다 불편해졌다’는 의견이 66.8%로 뒤를 이었으며, ‘심사와 평가의 편파성 증가’(50.3%), ‘비효율적인 심사, 관리시스템’(37.6%)도 문제로 제기됐다.

한국연구재단이 이공계중심 정책기관으로 알려진 미국 NSF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출범 이전부터 ‘인문· 사회과학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이에 대해 조돈문 교수는 “한국연구재단 통합 자체에서 비롯된 결과라기 보단 국가권력 및 한국연구재단 설립과 임원진 선임 등 지배구조 변화의 결과로서 심사과정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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