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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첫 번역 자부 … 자본주의 대안논리 기대”
“제대로 된 첫 번역 자부 … 자본주의 대안논리 기대”
  • 강신준 동아대·경제학
  • 승인 2010.09.24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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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마르크스 지음, 『자본』(강신준 옮김, 길, 2010)

『자본』은 참으로 이상한 책이다. 이 책의 명성은 인류가 남긴 지적 유산 가운데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1999년 9월 영국 비비씨 방송의 라디오4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난 천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마르크스가 단연 1위에 올랐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주저인 『자본』의 영향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고, <교수신문>이 2008년 봄 정부 수립 이후 남한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에 대한 조사에서도 『자본』은 1위를 차지했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한국사회는 물론 사회주의권이 붕괴해 버린 유럽사회에서도 이 책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책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처럼 유명한 책을 모두 읽어본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존 번역본 문헌적 의미 없어

지난 6월 마르크스-엥겔스 신전집(MEGA) 간행과 관련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본의 오무라 동북대 교수와 무슨 얘기 끝에 그가 이런 질문을 내게 던졌다. 일본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는 900명이 넘는데, 이 가운데 이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이 몇 명 정도 될 것 같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을 주저하자 그는 농담기를 섞어서 결코 50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 연구에서 독어권을 제외하고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에서 그것은 상당히 놀라운 얘기였다. 그런데 이어서 그는 한국에서는 몇 명이나 될 것인지를 다시 물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난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학자가 이 책을 읽는다는 의미는 그것을 연구의 문헌적 토대로 삼는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에는 아예 그런 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국내에는 그동안 『자본』에 대한 두 개의 번역본이 존재했지만 둘 모두 문헌적 의미를 가진 책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필자와 운명적인 관련을 맺었던 이론과실천판은 번역대본이 독일어 원전이긴 했으나 제1권은 번역의 책임이 없는 익명이었고 제2권과 제3권은 익명은 면했으나 변변한 해제도 없는 빈약한 책이었다. 문헌적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뒤이어 출판된 비봉판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영어본에 주로 의존한 중역본이라는 문제점 외에 대본마저도 일관된 하나의 판본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여러 판본을 뒤섞어 버린데다 화폐단위와 무게단위 등을 임의로 우리나라의 원, 혹은 가마 등으로 바꿔 버리는 바람에 문헌적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문헌적 근거를 갖는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았고 독일어를 직접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은 사실상 『자본』에 대한 학술적 인용과 연구를 할 수 없었다.

20여년 전 필자는 얼떨결에 친구로부터 넘겨받은 한 뭉치의 원고를 통해 『자본』과 예기치 못한 인연을 맺었다. 그것으로 대학강단에 선다는 것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고 더구나 그것이 평생의 업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러나 운명이란 얄궂은 것이어서 필자는 그 모호한 인연 때문에 대학에 가게 됐고 평생을 이 책과 함께 하게 됐다. 강단에 서 있는 20년 동안 매학기 『자본』을 강의하면서 당연히 필자에게는 문헌적 의미를 가진 『자본』의 번역본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내 과제로 남아 있었다. 2009년 연구년을 받아 독일로 떠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은 바로 이 오랜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제1권은 애초에 마르크스의 원고가 잘 다듬어진 책이어서 번역 자체의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제2권의 작업도 내용상 혼동을 주의깊게 피하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엥겔스도 고백했듯이 역시 제3권이 문제였다. 내용의 난삽함에다 원고의 불완전성, 그리고 원본 자체에서 숱하게 발견되는 계산상의 오류들이 있었다. 번역대본은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보다 대중적인 메프(Marx Engels Werke)를 사용했는데 이는 엥겔스의 최종 편집본에 근거한 것이다. 번역본은 메프의 원본 쪽수를 표기함으로써 독일어를 모르는 사람도 메프의 쪽수로 인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자본』과 관련해 우리나라에는 보다 심각한(어쩌면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번역본의 오랜 문헌적 결함은 바로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연구자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나는 그 핵심적인 이유가 이 책에 대한 오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독일에서도 마르크스 재조명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일 뿐 그 실천적 대안에 대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는 풍문이 지배적으로 떠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의 가장 중요한 성격인 변증법적 방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개념에서 비판은 대안의 출발점이자 전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에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의 변증법적 방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의 『자본』을 실천적 함의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단지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3천 쪽(번역본 기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과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9년 1월 필자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독일에서는 마르크스의 귀환소식이 한창 떠들썩했다. 마르크스를 선거벽보에 내세운 정당이 선거결과에서 대약진을 했고, 대학에서는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자본』의 판매량도 급증했다. 2008년 세계공황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확인시켜 줬고 그 대안적 논의의 출발점이 『자본』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인식의 발로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정당에서도, 강의실에서도, 도서판매시장에서도, 그리고 어떤 실천적 대안의 논의에서도 『자본』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자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였다.

필자는 문헌적 기초를 확립한 이번 『자본』의 번역이 『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그것을 통해 실천적 대안의 논의가 무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진보진영이 대안 부재로 허덕이고 있는 까닭이 『자본』의 연구가 진전되지 않은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유럽 진보 진영의 모든 논의는 비록 마르크스가 명시적으로 거명되지 않는 경우에도 이미 마르크스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르크스를 공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독일 금속노조의 임금교본에 버젓이 『자본』의 지불노동과 미지불노동의 개념이 설명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비에트의 몰락으로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자본』의 얘기가 입증된 지금, 『자본』이라는 징검다리 없이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논의는 결코 성과를 거둘 수 없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과학적 확신임을 얘기해 두고 싶다.

강신준 동아대·경제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자본」의 이해』등이, 옮긴 책으로는 『자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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