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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그때 그때 달라요”
[나의 강의시간] “그때 그때 달라요”
  • 정명희 안양대·디지털미디어학과
  • 승인 2010.09.0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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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주인공은 학생이며 좋은 수업은 전적으로 학생과의 소통에 달려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올바른 인생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듯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 학기 동안 수업이라는 작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기본적인 교수법이나 학생들과의 소통 방법은 일관된 나의 방식이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질문한다면 답은 “그때 그때 달라요”다. 왜냐하면 수업의 주인공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와 처음 교단에 섰을 때 그리고 지금, 학생들은 정말 많이도 변했다. 처음에는 전체 분위기와 전반적인 학생 특성을 파악해 수업 방식과 목표치를 설정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방식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서야 학생 하나하나의 개성과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조합이 수업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생 각자 수업 목표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속도와 역량 또한 다르다. 이건 강의시간에 교수인 내가 소화해 내야 한다.

나는 처음 3주 정도는 관심을 갖고 학생을 잘 관찰한다.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흘러가는 질문으로… 누가 이 수업의 롤 모델이 될 것인지, 누가 더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적어도 수업이라도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학생은 누구인지 등등. 이러한 탐색은 수업시간 중 내가 ‘맡겨야 할 학생들’의 역할을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흥미롭게도 이 또한 한 학기 동안 변하기 때문에 늘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설정한 학생들’의 역할은 팀티칭을 통해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나는 그 역할에 대해 아낌없이 공개적으로 격려만 해주면 된다. 놀랍게도 나의 롤 모델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훌륭한 결과물을 학생들에게 제시하며 자연스럽게 달성해야할 목표치를 제시하고, 역량이 되는 학생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돕고, 지루하고 힘든 수업 과정이 있으면 학생들의 정신적 멘토를 이용(?)하면 된다. 그래서 수업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며 매학기 다른 수업이 된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수업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한 학기동안 크게 성장하는 학생들을 많이 지켜봤다.

내가 하고 있는 수업은 딱딱하고 지루한 수업들이 대부분이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지루함은 수업의 목표가 무엇인지 길을 잃어버리기에 딱 좋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한 학기 내내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배우고 있는 내용이 도대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강의시간 중간 중간뿐 아니라 시험에도 10점짜리 문제를 내고 묻는다. 항상 모든 답은 정답으로 처리하는데 예상대로 학기말 시험 마지막 문제에서는 나름대로 맞는 답을 적는다. 배운 내용은 잊어버리지만 왜 필요했는지 기억한다면 언젠가 필요할 때 스스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는 것을 나는 학생들을 통해 알게 됐다.

얼마전 내 수업에 멋쟁이 한 학생이 있었다. 딱 봐도 한눈에 이 학생은 전공에 전혀 관심이 없고 적성도 맞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 공학인증 때문에 억지로 버텨야 했다. 강의실에 나타나 주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낌없이 해줘야 할 판이었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그 학생은 내게 “교수님 때문에 수업을 버틸 수 있었어요”라며 편지를 썼다.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학생들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학생들 모두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배울 수 있게 해줬고 학벌보다 배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학생을 믿고 격려해 주고 성장을 기다려 주는 것이 바로 교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인생을 가르쳐 준 학생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아직도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 길을 찾아가야 한다.

 

정명희 안양대·디지털미디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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