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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8>감나무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8>감나무
  • 교수신문
  • 승인 2010.09.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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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풍성함 주는 진분홍빛 열매의 미덕

종이가 귀했던 어린시절에는 감나무 잎을 접어 딱지치기를 했고, 감꽃을 실에 꿰어 주렁주렁 목에 매달고 다니다가 출출하면 텁텁하고 달착지근한 그것을 군것질삼아 먹었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홍시로 허기를 달랬다. ‘지리산 산청곶감’을 깎는 ‘단성감’으로 이름난 감곳에 살았기에 이런 소중한 체험을 한다. 감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근방이며(감을 제일 많이 수확하는 나라는 중국, 2005년 기준 25만 톤으로 우리나라, 일본 등의 순임), 영어로 persimmon tree, 한자로 枾樹라한다. 잎 지는 큰키나무(落葉喬木)로 잎은 어긋나고 둘레에 톱니가 없고 달걀꼴이며, 요새는 어린감잎을 따말려 감잎차를 만든다. 그리고 둥그런 鐘 모양인 꽃잎은 넷이고, 꽃받침은 3∼7갈래로 감이 익어도 떨어지지 않고 열매 밑을 떠받친다. 아낙네들이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면 아들을 낳는다”고 목에 둘렀으니 감꽃목걸이나 진주목걸이나 다 목이나 손목발목을 묶는다는 그 본성엔 하나도 다르지 않다.

퍼런 감이 토란 크기만 해질 무렵 도사리(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진 과실)를 소금물항아리에 넣어 우려먹었으니 떫은맛을 내는 타닌성분을 삭이는 것이다. 땡감 먹느라 거뭇거뭇 감물이 흰옷에 묻으니 엄마에게 꾸중도 자주 들었지. 이렇듯 풋감을 물감으로 썼으니, 짓이겨 으깬 즙(타닌)으로 옷감에 물을 들이니, 무명천에 감물을 들인 옷을 ‘갈옷’이라 한다. 그리고 검은 줄무늬가 나는 먹감나무는 재질이 좋아 장롱 짜는데 제격이다.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감잎도 감도 뻘겋게 가을 옷을 입는다. 감을 나무에 너무 오래 두면 묽어져 홍시가 돼버리기에 때를 놓치지 않고 따야하고, 주어먹고 남은 쓸모없어 보이는 깨진 홍시는 큰 항아리에 넣어둬 감식초를 만든다. 요사이는 감을 기계로 척척 한다는데 그때서야 언감생심, 밤새 껍질을 뱅글뱅글 돌려 벗기고 나면 손가락이 어리어리해지고 내 허리가 내 것이 아니다. 깎은 감을 옛날에는 대꼬챙이나 싸리꼬치에 꿰어 말렸으나 요즘은 감꼭지에 실을 매어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뒤룽뒤룽 매단다. 덜 말려 말랑말랑한 것을 반시, 바싹 말린 것을 건시라 하는데 거기에 핀 하얀 가루는 포도당/과당이니 털어버리지 말 것이다. 허참, ‘곶감 빼먹듯이’ 한 살, 두 살 …… 일흔한 살, 내처 세월을 뽑아 먹다보니 몇 안남은상 싶다. 아껴 먹을 것을, 참 달고 맛있었는데…. 

 

헌데, 취기가 남은 사람들 입에서 풍기는 술 내음이 바로 홍시냄샌데, 우연찮게도 숙취 잡는 데는 홍시가 첫째간다. 술을 깨는 데는 포도당주사가 제일이듯 바로 홍시에 포도당이 많이 든 탓이다. 그리고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은 많이 먹으면 변비로 고생한다는 말인데, 곶감에 든 타닌은 대장에서 수분흡수를 빠르게 하기에 설사에 홍시나 곶감이 좋다.

그런데 果樹는 어느 것이나 다 접을 붙인다. 고욤나무 臺木과 감나무가지를 서로 비스듬히 삐져 맞대고 실로 창창 매준다. 결국 두 나무의 핏줄과 신경 즉, 부름켜와 관다발을 이어주는 것으로, 고욤나무는 야생종이라 병에 강하고 물과 양분도 척척 잘 빨아들기에 그런다. 그러한데 요상하게도 감 씨를 심은 자리에 떡하니 고욤나무가, 귤 씨에서는 탱자나무 순이 솟더라! 왜? 우리가 먹는 과일의 열매 살은 씨방이 부풀어난 것이고 씨는 씨방 안에 있는 밑씨가 자란 것이다. 씨방이 돌연변이로 맛있고 주먹만 하게 커졌지만 밑씨는 변함없이 고욤/탱자라는 야성을 그대로 대물림하고 있어 그렇다.

감나무는 이해 감이 열리면 다음해는 열리지 않는 해거리를 했었다. 바보스럽게도 그게 유전적으로 그런 것이라 여겼으니 ‘감쪽같이’ 속았다. 격세지감이 든다. 요즘은 퇴비거름을 잔뜩 주고 농약까지 치는 까닭에 도통 해거리가 없다. 참 신통하다! 가지가지에 주렁주렁 한가득 매달린 진분홍빛(토마토에 많다는 lycopin색소 때문임) 열매에서 가을의 정취와 풍성함을 느끼고, 우듬지에 달려 있는 너더댓 개의 까치밥에서 나눔의 미덕을 깨닫는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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