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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임’의 진원지는 김억이 번역한 타고르의 ‘God’”
“1920년대 ‘임’의 진원지는 김억이 번역한 타고르의 ‘God’”
  • 박태건 원광대·국문학
  • 승인 2010.09.0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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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사연구소 창립 20주년 심포지엄 ‘한일병합 100년, 한국문학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강평기

민족문학사연구소(대표 김영 교수, 이하 민문연)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 충북대에서 ‘한일병합 100년, 한국문학의 식민성과 탈식민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20년간의 민족문학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전망을 내놓기 위해 기획한 전국순회 심포지엄의 일환이다. 이번 주제는 일제의 잔재인 식민성이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한국사회를 지금도 규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민성이 일종의 지배구조로 고착화돼 있음을 경계하는 의미로 기획됐다.

총론을 맡은 하정일 교수는 「탈식민과 근대극복」이라는 주제 발제를 했다. 그는 탈식민을 근대적 기획으로 보는 한 식민주의의 극복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근대 극복의 기획이 중요한데, 하 교수는 그것이 크게 두 흐름-탈근대 기획/근대 극복론으로 분화돼 왔다고 진단하면서 “볼세비키화론과 네그리의 제국론으로 대표되는 탈근대 기획이 근대성에 대한 평면적 인식으로 인해 실패에 봉착했다”고 비판한다. 

반면 근대의 해방적 잠재력을 극대화함으로써 근대를 內破하려는 근대 극복론은 대안적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한다. 특히 근대 내부로부터의 근대 극복을 지향하는 이중과제론은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에 바탕해 제기된 내발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하 교수의 주장이다.

김승환 교수는 「남정현의 『분지』를 통해 본 한국소설의 식민성과 탈식민성」에서 『분지』를 단순히 미국을 부정하는 반미소설로만 읽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며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을 상기시킨다. 이중의 식민상태에 놓여 있는 기층민중의 자기각성과 저항주체의 형성이 작품의 숨은 주제론이라는 것이다. 부정의 방법은 제임슨의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로 표상된다.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검열 때문에 불가능한 상태에서 민족주의나 반미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서술의 장치인 알레고리로 변환되면서 민족적 알레고리가 됐다.

“민족문학, 새로운 방법론 제시해야”

유성호 교수는 「1980년대 시의 리얼리즘과 탈식민성」에서 1980년대 문학의 층위를 총체화된 기억의 범주로 규정한다. 그는 최근 우리 시단에서 보이는 경계해체와 탈중심성에 대항한 새로운 방법론을 민족문학이 시급하게 제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작가들의 ‘미적 저항’의 원리가 희미해지는 과거에 대한 기억의 재현이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사적 ‘기억’으로 탈주하려는 경향을 비판했다.

1980년대의 ‘공동체적 기억’과 매개된 상상력을 통해 기억의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나아가 사회적 상상력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위해선 유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에 계속 체험되는 과거의 기억에서 과거-현재-미래의 분절을 통합하는 ‘충만한 현재성’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각성이 보다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발표 중 관심을 끈 주제는 오문석 교수가 발표한 「1920년대 인도문학의 유행과 탈식민적 관점」이다. 주목되는 것은 서양인의 ‘타고르를 통한 동양보기’와 조선인의 ‘타고르를 통한 식민지 현실 보기’와의 겹침과 차이다. 이른바 ‘인도를 통해 말하기’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일본정부의 ‘영국에 대항하는 인도’ 전략과 맞물렸기 때문. 타고르와 나이두로 대표되는 인도의 작가들은 ‘서양의 인정을 받아낸 동양의 시인’이라는 점에서 식민지 조선에 미친 영향은 더욱 컸다. 벵골어가 영어로, 영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종교적 의미의 변화양상에 주목한 점이 흥미로웠다. 그는 타고르의 작품을 김억이 번역하면서 ‘God’이라는 표현을 당시의 성서번역을 참조해 ‘主’로 번역한 것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인에게 유행했던 ‘임’의 진원지였음을 유추해낸다.

「해방직후 채만식 문학과 탈식민성」을 살펴 본 류보선 교수는 친일의 혐의로 얼룩진 채만식 문학에서 ‘반성의 윤리성과 정치성’을 추출해 낸다. 그는 해방직후 채만식 문학에 내장된 문제성을 맥락화할 때 채만식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채만식이 해방직후 「민족의 죄인」을 통해 친일행위를 반성한 것이 단지 과거에 대한 참회나 고해성사로서의 반성만이 아니라 과거를 되짚어보는 성찰이라는 것이다. 류 교수의 발표는 식민주의 못지않게 근대 국가주의가 문제라는 관점이 제기되면서 재토론으로 이어졌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중요하게 거론된 논의 중 하나는 네그리의 ‘제국론’이다. 박수연 교수의 「국가 상상의 경계」는 시민과 인륜성을 결합한 시민인륜을 새로운 국가의 기반이 될 이념 원리로 제기한다. 헤겔의 인륜성이 자율적 개인과 그것의 결사로서의 시민사회의 파괴성에 대한 우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시민과 인륜의 결합은 매우 도발적인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토론과정에서도 시민과 인륜을 조화시킬 수 있는 매개고리가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국가를 넘어선 국가’의 가능성

민문연 창립 20주년을 맞아 열린 3차 심포지엄은 식민주의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지배의 관점이 아니라 저항의 관점에 설 때 비로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내게 던져줬다. 저항의 관점에 설 때 식민주의가 고정된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닌 역사적 운동으로, 말하자면 주체들의 상호각축으로 생동하는 역동적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국가를 넘어선 국가’의 가능성을 강조했는데, 국가의 내용성에 대한 분별 없이 모든 국가를 근대주의로 환원시켜버리는 최근 학계의 탈근대주의적 풍토에서 그것은 대단히 신선한 문제제기로 보였다. 근대성의 성취와 근대 극복을 동시에 이뤄내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선 국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국가를 넘어선 국가’란 결국 민족국가의 해방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때 도달할 수 있는 包越의 경지를 가리키는 것 아닐까.

박태건 원광대·국문학

필자는 원광대에서 「신석정문학의 탈식민성 연구」로 박사를 했다. 현재 민족문학사연구소의 집행위원이며 원광대학교 글쓰기센터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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