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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② 무엇이 위기인가 ─ 학생이 없다
[연재기획] ② 무엇이 위기인가 ─ 학생이 없다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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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족 현상 심화 … 연구비 증액도 역부족
지방대가 학생 가뭄에 목이 타오르고 있다. 교육 부문의 공급과잉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학들이 학생을 찾아나서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대는 지원기피와 수도권 대학 편입이 맞물려 고사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방대가 붕괴된다면 해당 지역 발전에 지장을 초래함은 물론 교육 체계 전반에 커다란 결함이 생길 수 밖에 없다.

2001년도 국정감사에서 교육위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현황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육협의회 모두 “재학생, 입학예정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교육위 의원들도 지역구의 반발을 생각해 더이상 자료제출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대 신입생 부족사태와 관련한 흉흉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교수들에게 신입생 모집인원을 할당하고,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벌점이 주어진다”, “대학 교직원들이 원서접수 기간에는 고등학교 교사들을 접대하기 위해 한밤중에도 이리저리 술자리에 불려 다닌다”, “학생 한명이 원서를 쓰면 얼마가 주어진다”는 등등.

지방대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학생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입생이 없다. 김 아무개 교수(영어영문학)가 근무하는 지방사립대학은 몇 년 전부터 신입생 모집에서 절반을 근근히 넘기고 있다. 교수들도 대학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책임시수 9시간 이외에 자진해서 3시간씩 무료로 강의하기로 결정했다. ‘경기’가 좋은 시절에도 12시간이 넘도록 강의한 적은 많지만 요즘은 더욱 힘이 들다. 그래도 학부제 도입 이후 대학 측에서는 학생이 한 명이더라도 강의를 개설해 줘 폐강되는 일은 거의 없다. 김 교수는 “교수 대 학생비율이 낮아져서 교육효과가 커졌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서울로 가지 못해 남아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한 학생들을 앞에 두고 어깨가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03년. 전체 고등학교 졸업생수가 대학입학정원보다 줄어드는 첫해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부산·전남·광주 지역은 올해 입시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자수가 대학입학 정원보다 적었다. 부산지역 대학의 입학정원은 6만3천25명. 그러나 이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자수는 5만 여명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광주·전남 지역도 4천여명이 적었다. 이러다 보니 이 지역 대학들의 신입생 등록률도 자연히 떨어졌다. 국립대학이나 역사가 깊은 사립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남대 95.5%, 조선대 98.4%, 호남대 96.7%, 광주대 90.6%로 지난해 비해 떨어졌다.

“2003년은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학생부족 사태는 해가 갈수록 더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입시에서는 전국의 고등학교 졸업생수가 대학입학생 수보다 6만 여명이나 부족하게 된다. 서울부터 학생을 채워나가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서지 않는 한 지방대학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다.

재학생도 없다. 지난해 영남지역에 소재한 한 사립대학은 중도에 대학을 그만둔 학생들의 통계를 냈다. 그 결과 1998년, 1999년, 2000년 3년 동안 해마다 입학생기준으로 30%가까운 학생이 대학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힘들게 선발한 학생 10명 가운데 3명은 대학생활 4년을 채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수도권이나 대도시 대학에 편입학 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지방대학은 편입생으로 빈 자리를 채우기도 쉽지 않다. 이 대학은 2000년에만 3백42명이 그만둬, 편입생으로 충원할 계획이었으나 51명밖에 선발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2백38명이 나가고, 75명을 뽑았다. 이 대학 교무처장은 “수도권 대학의 휴학생은 대부분 잠재적 재학생이지만, 지방대는 편입을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결국 이 대학은 입시홍보 뿐만 아니라 복학예정자들에 대한 홍보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1학기 편입학 모집결과 수도권 대학에서는 1만67명의 편입생으로 뽑아 당초 모집 예정인원의 95.1%를 채웠다. 반면 지방대학에서는 2만4천5백72명을 선발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74.3%인 1만8천2백78명을 뽑는데 그쳤다.

학생부족문제는 학부생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의 또 다른 한축을 감당해야할 연구인력 역시 없다. 호남지역 국립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김 아무개 교수는 요즘 컴퓨터에서 출력해 놓은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기초학문지원사업’ 계획표를 보면 한숨이 난다. 총 1천여억원이 지원되는 이번 사업계획이 발표됐는데도 연구비에 목말랐던 김 교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연구과제를 지원하려면 대학원생 연구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이 BK21사업에 선정된 대학으로만 몰려가더니 이제는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대학원생마저 부족하게 됐다.

또 다른 지방 국립대학에서는 10억원 규모의 대형과제에 지원하기 위해 연구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관련분야를 전공한 전임연구인력만 20명이 있어야 하지만 모두 서울로 가버려 5월말까지 이 인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쪽에서는 기초학문분야에 건국이래 최대 금액이 지원되는 사업이라고 기뻐하지만 자칫 수도권 대학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10명중 3명은 중도에 그만둬

학진의 ‘중점연구소지원사업’에 4개 연구소가 선정돼 있는 전남대도 해마다 타 대학출신 박사 학위자를 구하는데 애를 먹는다. 한달에 1백80만원씩이 지원되는 전임연구원을 본교출신과 타 대학 출신으로 반반씩 채워야 하지만 타 대학 출신 박사들이 모두 서울로 가버려 이 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들이 자기식구 챙기기에 급급한 것을 막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지방에서는 오히려 사업 진행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에 이처럼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품귀현상을 빚자, 각 대학마다 자체적으로 대학원 육성방안을 내놓고 있다. BK21사업 시행 이후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자 한 대학에서는 대학 자체적으로 BK21사업처럼 대학원생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원생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대학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미 서울로 시선을 고정시킨 학생들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방대학 관계자는 “고학력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기피하고, 학업에 뜻을 둔 학생들도 그나마 수도권대학으로 가버린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지역의 연구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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