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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7] 반딧불이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7] 반딧불이
  • 교수신문
  • 승인 2010.08.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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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름 살더라도 빛 고운 그네들, 지금은 어디갔나

권오길
우리가 어릴 적 만해도 저녁밥을 먹고 바람 쐬러 나와 낮게는 키 높이로 날고 있는 개똥벌레( ‘반디’ ‘반디벌레’ ‘반딧불’) 녀석들을 팔짝 뛰어 손바닥으로 탁 쳐서, 잡자마자 사정없이 꼬랑지를 떼어내 이마나 볼에 쓰~윽 문질렀으니 그것이 ‘귀신놀이’였다. 칠흑 같은 여름밤어둠이 짙게 깔린지라 얼굴에서 잇따라 빛을 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반딧불이 빛, 螢光이다. 悠悠自適, 이런 어둔 밤 동구 밭 어귀에 별똥별처럼 흩날리던 너희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가셨나이까?

개똥벌레의 바른 우리말이름(國名)은 ‘반딧불이’이고 한자로는 ‘螢火’, 영어로는 ‘firefly’다. 그리고 ‘螢雪之功’이란 반딧불이의 꽁지불빛과 눈빛(雪光)으로 학업에 정진해 立身揚名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중국 晉나라 故事에, 孫江과 車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강은 겨울이면 항상 눈빛에 비추어 책을 읽었고, 차윤은 여름에 낡은 명주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많이 잡아넣어 그 빛으로 책을 비추어 낮처럼 공부했다.”고 한다. 필자도 어릴 때 이야기를 주워듣고 녀석들을 마구 잡아 유리병에 한가득 넣어 흉내내봤으나 별로 신통치 못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난다(최소한 200마리는 돼야 신문활자를 겨우 구분한다 함). 군색하고 팍팍한 桎梏의 삶은 앞의 두 양반이나 우리나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반딧불이는 절지동물문(門)의 곤충강(綱), 딱정벌레목(目), 반딧불이과(科)의 곤충으로 보통 말하는 딱정벌레(甲蟲, beetle)인데, 성충(자란벌레), 알, 유충(애벌레), 번데기 모두가 빛을 낸다. 수놈의 몸 빛깔은 검은색이며 앞가슴등판은 귤빛이 도는 붉은색이고, 몸은 거칠고 딱딱한 겉껍질(外骨格)로 덮였으며, 배마디 아래 끝에 옅은 노란색(담황색) 빛을 내는 發光器(light-emitting organ)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된 여덟 종 중 실제로 채집이 되는 것은 기껏 애반딧불이, 파파라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 4종뿐이다. 그 중에서 애반딧불이(‘애’는 ‘작다’란 뜻임) 유충만 고즈넉한 산골짜기 실개천(溪流)에 살면서 다슬기나 물달팽이를 잡아먹고 나머지 셋은 땅(뭍)에서 달팽이나 민달팽이를 잡아먹는다. 거참, 우연찮게도 놈들이 글 쓰는 이가 專攻하는 軟體動物을 먹고 사는군!

深海魚나 일부 버섯과 미생물, 반딧불이는 예사롭지 않게도 몸에서 빛을 내니, 이들 發光生物은 ‘빛(光)으로 말(言)’을 한다. 벌은 몸을 흔들어서, 매미나 개구리는 소리, 나방이들은 냄새, 파리나 모기는 날개의 떪(진동), 박쥐는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말이지. 하여 암수가 서로 깜빡깜빡 빛으로 알리고 알아낸다. 자동차에서 내는 꼬리 불(尾燈)도 분명 반딧불이의 그것을 본 딴 것일 터! 그런데 반딧불이의 종마다 빛의 세기, 깜빡거리는 속도, 꺼졌다 켜지는 시간차들이 달라서 끼리는 서로를 가늠한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불이 훤히 밝아(빛의 간섭을 받아) 우리가 하늘의 별을 보지 못하듯이, 이것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없으니 불빛이 없다시피 한 호젓한 두메산골을 찾아들 따름이다. 

여느 생물처럼 종족보존을 위해 아등바등 애써 힘겹게 살고 있으니 반딧불이의 삶 또한 결코 시시하다 할 수 없다. 이들은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날개돋이(羽化) 할 때는 이미 입이 완전히 퇴화해버리고 말았으니 내처 살아있는 동안에 도통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대신 기름기(지방)를 몸에 그득 쌓아서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낸다.

그런데 암놈들은 수컷과 딴판으로 허옇고 큰 구더기를 닮았고, 하나같이 겉날개(딱지날개)뿐만 아니라 얇은 속 날개까지 송두리째 退化해 날지를 못하는 앉은뱅이다. 됨됨이가 미욱하다 탓하지 말자. 하여, 풀숲에서 우러러보고 “여보, 나 여기 있소” 하고 ‘사랑의 신호’를 날려 보내면 사방팔방 무리지어 나부대던 수컷들이(性比, ♂:♀=50:1) 떼거리로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달도차면 기우는 법, 그럭저럭 머잖아 생을 마저 접어야 하는 탓에 바쁘다, 바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씨(DNA)를 남기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작 한 보름 살 것을 가지고 그 고생을 한담!? 반딧불이 당신의 한살이나 내 한평생이 크게 다르지 않으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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