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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취지를 ‘사학 자주성 중시’로 해석 … 대학 공공성에는 왜 눈감았나
대법원 판결 취지를 ‘사학 자주성 중시’로 해석 … 대학 공공성에는 왜 눈감았나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08.23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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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키운 사분위의 상지대 정이사 선임 결정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의 상지대 정이사 선임 이후 상지대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상지대는 지난 9일 사분위가 결정한 정이사 선임의 행정처분을 거부하고 있다. 사분위에는 ‘비리재단을 복귀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종전이사에게 사실상 운영권을 넘겨주는 결정이 이어지면서 사분위 폐지 여론도 일고 있다. 궁지에 몰린 사분위도 해명하고 나섰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상지대 정이사 선임의 문제는 무엇인가.

2007년 ‘상지대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먼저 ‘상지대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석문제다. 지난 2007년 대법원이 내린 상지대 판결의 요지는 구 사립학교법상의 임시이사에게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법원 판결이 사분위가 임시이사 파견대학의 정상화 원칙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준거 역할을 한다. 이를 놓고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와 사분위는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상지대 비대위는 사분위의 ‘정이사 선임 원칙’이 판결을 왜곡해, 개정사립학교법을 위배했다는 입장이다. ‘정이사 선임원칙’은 사분위가 지난 2009년 9월에 마련한 ‘원칙적으로 종전이사에게 법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과반수의 이사 추천권을 줘야 한다’는 내용을 말한다. 비대위는 “상지대 대법원 판결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하는 절차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고, 정시이사 선임권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종전이사에게는 정이사 선임권과 추천권 등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분위는 “이번 상지대 결정은 대법원의 판결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분위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가 ‘사학의 자주성을 중시한 판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상지대 대법원 판결’해석 논란은 종전이사의 권한을 따지고 있지만 결국 사학의 자주성과 공공성 가운데 어떤 가치를 우선 할 것인지로 수렴된다. 사분위는 “(상지대 비대위 측이) 판결요지만 보고 잘못 해석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 배경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해 학교의 정체성을 뒤바꿔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상지대 비대위 측이 대법원 판결을 축소 해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법원 판결과 사분위의 ‘정상화 원칙’은 구 사립학교법에 기반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개정된 사립학교법에는 구 사립학교법에 명시한 ‘학교법인의 정상화를 심의할 경우 상당한 재산을 출연하거나 학교발전에 기여한 자의 의견을 들어 관할청이 정이사를 선임하도록 한 규정이 빠졌다. 상지대 비대위 측은 “상지대 대법원 판결은 임시이사 파견대학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사립학교법과 민법 등을 고려한 일반원칙을 따를 것을 명시하고 있다”면서 “사분위의 정상화 원칙은 개정사립학교법에 비춰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최근 신성학원에 대한 대법원판결은 종전이사의 권한을 축소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성학원 판결의 요지는 ‘사분위가 정이사를 선임할 때 사학비리가 심한 종전이사의 의견은 참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분위 결정과는 배치되는 판결 내용이다. 

‘20년 무자격 이사’에 관대한 사분위

1기 사분위는 정이사 선임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종전이사’의 자격과 범위를 규정하는 데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정이사 선임원칙’은 종전이사를 ‘임시이사가 선임되기 전에 적법하게 선임됐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로 정의하고 있다. 쟁점은 김문기 전 이사장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상지대 비대위는 김 전 이사장이 ‘종전이사의 자격이 없다”고 지적한다. 김 전이사장은 지난 1972년 임시이사로 있다가 2년 뒤에 본인을 정이사로 선임했기 때문에 ‘상지대 판결’에 따르면 정이사 선임행위가 무효가 된다는 논리다. 또 교과부의 실태조사 결과 드러난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이사회를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비대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김 전 이시장은 ‘적법하게 선임된 이사’도 ‘적법하게 퇴임한 이사’도 아니라는 결론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분위와 교과부는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김 전 이사장의 비리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사분위는 지난 18일 교과부 기자단에 발송한 참고자료를 통해 “학교법인의 설립과 성장, 발전에 그 이상의 기여를 했고 과오가 시정됐다면 단 한번의 관용도 없이 학교운영권을 영구박탈 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이사장은 부정입학 등이 적발돼 1993년 김영삼 정부 사정대상 1호로 지목됐다. 이후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받고 1995년에 사면·복권 됐다.

박병섭 상지대 비상대책위원장(법학)은 “사분위는 김 전 이사장이 저지른 비리가 예외규정에 적용되는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며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기준으로 장본인은 빼고 그 아들은 정이사 명단에 포함시켰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분위의 거듭된 해명에도 사분위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분위의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런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학교 구성원의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않았는지’ 상지대 구성원들의 불만과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파장이 계속되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교과위)도 전체회의에서 사분위 문제를 긴급현안으로 다루기로 했다. 변재일 교과위 위원장은 최근 안병만 교과부 장관과 이주호 장관 내정자에게 국회 논의 절차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행정처분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위는 이주호 교과부 장관 내정자의 임명절차가 끝나는 대로 빠르면 오는 30일 경 전체회의를 열어 이 사안을 다룰 예정이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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