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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연구의 쟁점은] 그녀의 삶을 역사적 경험으로 말할 수 없다면
[나혜석 연구의 쟁점은] 그녀의 삶을 역사적 경험으로 말할 수 없다면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7.26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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晶月 나혜석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이다. 1995년 설립된 나혜석 기념사업회(회장 유동준)가 산파 역할을 했다. 물론 나혜석은 그 동안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끊임없이 언론의 조명을 받아왔지만 학계에서는 여성학자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논문 발표에 그친 것이 전부였다. ‘바람난 이혼녀’란 주홍글씨는 학계에서도 유효했다.

나혜석은 선각자적인 여성해방론자이자 화가와 문인, 독립운동가로서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보여줬다. 그만큼 그녀에 관한 연구는 여성학을 비롯한 사회학, 문학, 미술계 등에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중 미술계에서는 1960년~1970년 이경성과 이구열이 나혜석의 선각자적 면모와 인생역경을 부각시킴으로써 나혜석 회화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윤범모 경원대 교수(미술사학)가 1990년대 초 나혜석의 미술학교 시절까지의 생애와 작품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면서 나혜석의 회화는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1990년 이후 나혜석의 유화를 페미니스트 생애와 관련해 연구하는 경향이 대두한다. 그러나 입장이 엇갈린다. 김홍희와 김현화는 나혜석이 여성해방운동을 자신의 애정행각을 미화시키는 데 이용했을 뿐 그녀의 유화에서 페미니스트 의식을 찾아보긴 어렵다고 주장한 반면, 윤범모는 초기 삽화의 제한된 범위로나마  분명 페미니스트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나혜석은 2000년대 초까지도 부르주아적 개인주의 자유연애주창자로 비쳐졌다. 그러나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신여성 나혜석을 희생자였거나 식민지 조선에 너무 이르게 찾아온 선각자로 설명하는 기존의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1990년대 이후 여성사에 새로운 인식이 등장하면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나혜석을 비롯한 신여성을 평가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린다. 김은실 교수는 “지금까지도 나혜석의 글이 페미니즘 학사나 이론 시간에 논의되지 않는 것, 나혜석의 삶이 한국 여성의 역사적 경험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유감”이라며 나혜석 연구에 소홀한 국내 여성학계 연구 행태를 지적했다.

문학계에서 나혜석 연구는 작품 자체보다 나혜석의 삶과 여성해방 사상에 치우쳐 있다. 그녀의 작품은 신여성으로서의 삶과 그녀의 페미니즘을 규명하는데 자료로 동원될 뿐 아직 나혜석 문학에 대한 자료 정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서정자 초당대 부총장(국문학)은 “최초의 여성작가로서 그녀의 위상 정립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나혜석 문학 연구의 편향성을 비판했다.

이 밖에 박환 수원대 교수(사학)와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등은 각각 역사학이나 철학 등에서 나혜석의 독립운동 활동과 그녀의 사상을 주목하기도 했다. 그저 선정적인 사생활이 대중적으로 소비돼 왔을 뿐 나혜석에 대한 학계의 본격적인 연구는 그 역사가 채 20년에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학계의 부단한 노력은 나혜석이 2000년 2월 ‘이 달의 문화의 인물’로 선정되는 성과로 나타났다. 종합예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나혜석의 진면목은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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