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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 천재 화가 장승업의 손, 김선두 중앙대 교수
[사람의 향기] : 천재 화가 장승업의 손, 김선두 중앙대 교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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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35:13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임권택 감독이 스스로 필생의 역작이라 부르는 영화 ‘취화선’이 칸 영화제 경쟁 부분에 초청되면서 개봉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화제에 올랐다. 흔히 비운의 천재라고 부르는 오원 장승업. 어릴 적부터 그림에 신동이었고 왕의 총애를 입어 궁중에 불려갔지만, 억지로 임금 얼굴 그리는 일이 죽기보다 싫어서 궁궐에서 뛰쳐나온 뒤 기행과 방탕으로 살았던 그의 극적인 일대기에 아름다운 화면이 완성도를 더하지만, 영화에는 숨은 주인공이 또 하나 있다. 주인공을 대신해 그림 그리는 손으로, 뒷모습으로, 신들린 붓놀림을 보여주느라 6개월 동안 모질게 영화판에 묶여 있어야 했던 한국화가 김선두 교수(한국화학과)가 그이다.

처음 경험한 영화 현장

나름대로 많이 배웠다. 평생 그림을 그렸고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지만 남의 그림 그리는 일이 쉽지 않다. 영화에서 장승업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 소품으로 쓰인 다른 그림들도 많이 그렸다. ‘전이모사’라고, 위대한 옛 화가나 스승의 작품들을 따라 그리는 작업을 말하는데, 그 작업을 오랜만에 많이 했다. 질리도록 모사했다. 마치 학생 때로 돌아간 듯하다.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순발력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 감독과 스텝들과 특별히 대립할 것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그림 전문가가 아니고, 나는 영화 전문가가 아니니까 거기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있었달까. 화가의 눈과 영화감독의 눈은 확실히 다르더라. 화가가 보는 화면 구도와 영화인들이 보는 영화의 구도 역시 달랐고. 다른 부분은 몰라도 그림이 화면에 나올 때 발견된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지적했다. 많이 반영하고 고치려고 하더라.

장승업, 천재 혹은 열등감의 화신

장승업은 글쎄, 때를 잘못 타고났다. 이 ‘때’라는 것은 우리 ‘미술사적인 때’를 말하는 것이다. 조금 편협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다운’ 그림을 그려야 우리 미술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겸재와 단원이 인정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다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런데 장승업의 그림은 중국풍이다. 화가로서 생각하는 내 그림은 ‘우리적인’ 것에 대한 반성 내지는 추구이다. 사실 장승업은 너무 중국적이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그런데 영화하면서 장승업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다. 독창적이면서도 ‘톡 쏘는 맛’이 있더라. 말년 작업으로 갈수록 많이 우리다워지기도 한 것 같고. 천재라기보다, 그는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 했고, 벗어나지 못했기에 평생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그림 그리는 이라면 어느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영화배우 김선두

나 말고 다른 학교 선생들도 많이 와서 작업했는데, 다들 귀한 경험이었을 거다. 개강하고 학생들에게 영화 현장의 진지함이나 임권택 감독의 장인정신에 대해 얘기했더니 다들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 학생들에게 이야기거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고, 대학이라는 좁은 세계에 있다가 참 좋은 경험했다. 그런데 두 번은 못하겠다. 나야 손으로 하는 연기였으니까 그렇게 매달렸지 진짜 연기였다면 못했을 거다. 카메오로 한 장면 출연하기도 했는데, 정말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했다. 정말 두 번은 못할 일이다. 6개월 동안 매달리다보니 너무 힘들기도 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자문을 이종상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그분 때문에 얼떨결에 ‘주인공’을 떠맡기는 했지만, 우리 한국화가 새롭게 부흥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 우리 한국화가 침체됐다고들 하는데, 이 영화가 잘 되면 자연스레 한국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지 않을까 싶었고. 시사회를 여러 번 봤는데, 한국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 참 아름다운 그림이구나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참 다행이었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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