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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무탈하고 티 없이 잘 커야한다, 아가야!
제발 무탈하고 티 없이 잘 커야한다, 아가야!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07.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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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5> 탄생의 고함소리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생명의 시작에서 탄생까지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본다. 膣 안쪽 깊숙이 뿌려진 정자들은 떨어지는 순간 줄달음질을 시작한다. 마라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는 벌써 났다. 밀고 밀치고 야단법석이다! 난자가 있는 난관(나팔관, 수란관)쪽으로 죄다 시끌벅적 떼 지어 올라간다. 말 그대로 걷잡을 수 없는 疾走를 敢行한다! 용감한 정자들! 찬밥 신세가 되고 싶지 않거든 한달음에 달리고 또 내달릴 것이다. 끈 떨어진 뒤웅박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 눈물겹도록 최선을 다하는 씨앗들!

버거운 사투를 한지 30~60분에(정자의 운동속도는 1분에 1~4mm로 질에서 나팔관의 끝까지 길이가 약 20cm임) 난관의 제일 끝자락에 도착한 戰士가 약 200여 마리! 5억 중에서 겨우 200이 살아남고 죄다 戰死하고 말았다. 이제 정자는 어서 난자를 만나야한다. 난자가 난소에서 이미 배란됐으면 곧바로 수정으로 들지만 아직 난자가 난소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기다려야한다. 기다림도 한계가 있어서, 3일 이내에 임을 못 만나면 정자는 죽고 만다. 200마리 중에서 어느 누가 선택받을까? 5억 분의 1의 행운의 당첨자는 과연 누구람? 로또는 저리, 저리 가라다! 알고 보니 기적의 산물이 바로 나일세! 

행운을 차지한 受精卵이 수란관을 타고 약 1주일간 난할을 하면서 내려가 드디어 자궁벽에 착상할 시간이다. 이 낭배시기인 배아는 자궁벽을 뚫고 들어가니 이것이 착상이요 곧 임신이다. 3개월이 된 태아는 ‘미니인간’이다. 무게는 달걀(60g)보다 못한 50여 그람에 길이 9cm! 그 전까지는 태아란 말을 쓰지 않고 보통 배아라 부른다. 이제 태아가 태어날 시간이다. 수정 후 280일(음력 열 달)이 지났으니 익을 대로 익었다. 모두 머리를 밀고 나오는 데 어떤 녀석은 뜬금없이 엉덩이를 먼저 내밀고 나오니 말해서 ‘거꾸리’인데, 의학용어로는 臀位分娩이라 한다.

분만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증상이 ‘물이 비친다’는 것으로, 바야흐로 여태 몸을 담그고 있었던 양수가 터지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는 진통이 시작된다. 얼마나 아픈지 남자는 모른다. 헌데, 산모가 진통을 계속하고 있노라면 남편은 머리에 엉뚱한, 생뚱맞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처음엔 인간 본능이 발작해, ‘아들(♂)이면’하는 생각에 젖다가 산모가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별안간에 ‘딸(♀)이면 어때’로 바뀌다가, 너무너무 긴 시간 힘들어하니 ‘모르겠다, 산모나 건강했으면’하는 생각으로 바뀐다. 번개로 콩 구워 먹는 식이다.

 

이때 아이가 천둥소리를 내지르면서 태어나는 순간, ‘아들이었으면’하는 생각으로 회귀한다. 이것은 몹쓸 사람인 필자의 경험인데 아마 다른 아버지들도 별로 다르지 않을 걸! 제발들 입에 발린 虛言 좀 하지 말자. 마음을 기이지 말라는 말이다. 굳이 말한다면 아들딸을 구별하고 따지는 것은 산모, 어머니가 더 하더라!
실은 다음 것들을 이야기 하자고 긴 글을 썼다. 수정란이 약 41번의 세포분열을 끝내면 탄생을 한다. 여태 탯줄을 통해 피가 흘러들었기에 피를 통해 산소와 양들을 얻었지만 이제 탯줄이 잘려졌으니 산소공급이 차단되고 말았다. 숨이 차온다. 피 속에 이산화탄소가 자꾸 늘어간다.

이젠 제가 알아서 숨을 쉬어야 한다. 이것이 아기의 첫 울음소리다! 지축을 흔드는 呱呱之聲이 강렬하면 할수록 건강한 아이다. 으앙 으앙 으앙!!! 여태 양수에 잠겨서 쭈그러든 풍선 같았던 허파를 확 펴게 하는 것이 소리 지르기다. 또 심장에서도 우심방에서 좌심방으로 흐르던 곳이 판막으로 막히는 등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이것 하나만 잘 못 막혀도 심장판막증이 됨). 그냥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생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 ‘낯설고 물 선’ 이 세상에 당신은 태어났다! 글 쓰는 이도 한살이를 살아봐서 아는데, 이제 산전수전 다 겪어야 하는 험난한 앞길이 그대를 기다라고 있나니…. 녹록찮은 일생 길 말이다! 제발 무탈하고 티 없이 잘 커야한다, 아가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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