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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를 생각하다] 미안함과 회한으로 가슴이 저려온 까닭
[상지대를 생각하다] 미안함과 회한으로 가슴이 저려온 까닭
  • 정현백 성균관대·사학
  • 승인 2010.07.05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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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지대에 대한 해 묵은, 그러나 명료하게 각인된 기억이 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축출된 직후이니 15~16년 전의 일이다. 그날 나는 오전 10시에 김찬국 총장님을 찾아 뵙기로 했는데, 영하 13도인 추운 겨울날이었다. 차편이 적절치 않아, 1시간 여 일찍 상지대에 도착했다. 학교 안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학교 캠퍼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일제시대 아니면 못살고 어려웠던 50~60년대에 세운 것 같은 작고 초라한 건물 몇 동이 전부였다. 뼈 속을 스며드는 추위로 덜덜 떨렸지만, 학교 안에 몸을 녹일 만한 곳이 없었다. 아예 난방시설이 없거나 가동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안을 뱅뱅 돌다가, 간신히 둥근 석유난로가 있는 우체국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목재로 된 긴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1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상지대 캠퍼스를 방문해보면, 17년 전의 상지대에 비해 얼마나 큰 발전이 이뤄졌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상지대의 ‘구재단’은 17년 전인 1993년에 교육부와 대법원에 의해 각종 부패와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고 해체됐다. 김문기 이사장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서 ‘원인무효’의 처분을 받았다. ‘구재단’이 퇴출되고 상지대는 양심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임시이사회의 지휘와 구성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거의 ‘기적’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원주의 상지대가 다시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구 재단’의 복귀를 위한 조치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상지대 구성원들은 상지대를 지키기 위해 이미 2009년 9월부터 교내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4월 29일 제2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는 상지대 구성원들이 제기한 정당한 요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분위는 이날 회의에서 종전이사(김문기 전 이사장 측) 5명, 학내구성원 2명, 교과부 추천인사 2명을 학교법인 상지학원의 정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실상 ‘구 재단’의 복귀를 의미했다.

 

 이에 따라 상지대의 구성원들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사분위의 잘못된 결정을 폐기하기 위해 서울과 원주를 오르내리며, 교육과학기술부 앞 연좌시위, 국회 앞 1인 시위, 교내 천막농성 등을 이어가며, 무더위 속에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대학들은 이미 방학을 했으나 상지대는 종강을 일주일 미뤄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학생들은 기말고사의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분위의 잘못된 결정을 방학 중에 그대로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상지대 구재단 복귀를 결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분위 위원과 김문기 ‘구재단’과의 유착관계를 고발하는 양심선언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상지대 교직원의 모습을 대하면서, 나는 미안함과 회한으로 가슴이 저려왔다. 미안함은 같은 사립대학 교수이면서도 저리 처절하게 한국 사학재단의 현실을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상지대 교수들의 그을은 얼굴과 타들어가는 입술을 바라보며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빚’ 같은 것이다. 회한의 감정은 바로 이것이 한국의 사립대학이 처한 적나라한 현실임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미 분규가 있었던 사립대학에 비리와 부패로 축출됐던 사학재단을 속속들이 복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상지대 사태를 이렇게 만든 이명박 정부의 논리는 단순하다. 사유재산은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자본주의의 철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사립대학, 그것도 부모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유지되는 대학이 사유재산인가. 자본주의의 미덕은 단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인가. 전형적인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공공선의 개념은 ‘사유재산의 보호’를 상회하는 귀중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공선에 대한 강조 없이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이 진실을 정부가 되뇌어 본다면, 비리와 부패로 점철된, 경영능력도 없는 구 재단을 복귀시키는 어리석은 정치를 재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교수들도 상지대의 문제가 언젠가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상지대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바란다.

정현백 성균관대·사학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역사교육연구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민족과 페미니즘』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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