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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마르크스·엥겔스’ 독해, 전면 재검토 필요하다
학계 ‘마르크스·엥겔스’ 독해, 전면 재검토 필요하다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7.05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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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대회 ‘MEGA작업의 새로운 접근과 맑스의 재해석’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의 얼굴은 과연 진실일까. 1921년 리야자노프의 야심찬 구상에서 출발해 현재까지 100년을 이어오고 있는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Engels, Gesamtausgabe: MEGA, 이하 메가)이 완간을 눈앞에 두고 이 작업을 국내에 소개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지난달 30일 중앙대에서 열렸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원장 오명석 인류학)과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원장 장상환 경제학), 중앙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 김해연 영문학), 계간지 <마르크스주의 연구>(편집인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독일 프리드리히 애버트 재단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MEGA 작업의 새로운 접근과 맑스의 재해석’ 국제학술대회에는 메가 작업에 참여한 학자 롤프 헤커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아카데미 교수, 베아트릭스 부비에 독일 칼 마르크스 하우스 트리어대 교수, 오무라 이즈미 일본 도후쿠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메가 작업은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왜곡되거나 누락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1차 자료를 모두 복원해 출판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곧 국내에 소개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텍스트 역시 전면적인 검증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번 메가 작업이 국내 마르크스 연구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아 보인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도 이어졌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원)는 마르크스 이론 중 ‘구체’와 ‘추상’ 간의 관계에 복잡계과학을 접목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그람시를 통해 마르크스에게 정치란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했고, 김경수 고려대 교수(철학)는 헤겔의 자장을 벗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대한 재조명을 촉구했으나 모두 기존의 논의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복잡계 과학’으로  마르크스 재해석

 

마르크스를 이 시대에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헤겔을 통한 고전적 입장의 해석뿐 아니라 복잡계 과학을 이용해 마르크스 이론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도 있었다. 심광현 교수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이미 20세기 중반에 발전된 복잡계 과학의 특징이 내재해 있다고 제시하며, 마르크스의 변증법과 21세기 새로운 과학과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을 촉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본론』이 서술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복잡한 순환 회로를 시스템 이론으로 시각화 한다면 마르크스 사상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토론자로 나선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마르크스에 대한 현대적 해석들이 헤겔적 해석을 탈피하려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독해하는 마르크스주의 본래의 역할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다소 고전적인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는 “마르크스는 19세기 사상의 총아였지만 어쨌든 그의 사상은 19세기의 산물이다. 때문에 현재에 마르크스를 적용하려면 19세기의 역사적 지형 밖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학계에 그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가”라며 질문의 화살을 다시 학계로 돌렸다.

메가 전집의 완간은 그동안 국내 학계가 독해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텍스트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란 과제를 던졌다. 기존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은 1차 자료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수한 번역본이 만들어졌다. 소련 공산당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누락되거나 소멸된 부분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 『자본론』 제2, 3권의 경우 메가 작업과정에서 밝혀진 오류만 5천 개가 넘는다.

 

 수정된 것들을 밝히는 부록이 본래 『자본론』 보다 더 두꺼울 정도다. 메가 작업 과정을 발표한 롤프 헤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아카데미 교수는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정리한 마르크스의 기록 중 지워진 부분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본 결과 엥겔스가 자의적으로 바꾼 것도 많았다”며 메가 전집이 나오기 전까지 마르크스의 이론은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강조했다.

‘자본론’ 2·3권 오류만 5천개 넘어

국내 학계는 메가 작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토론 내내 국내 마르크스 연구의 재점검이 요청됐다. 특히 일본이 출판된 전체 메가 중 800질을 구입했다는 오무라 이즈미 일본 도후쿠대 교수의 말은 국내 학계의 마르크스 연구 현실을 환기해준다. 현재 국내 대학에 메가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학교는 한 곳도 없다. 토론자로 나선 신광영 교수는 “마르크스를 지성사적인 의미가 아닌 교조화된 텍스트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정치적 해석이 아닌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마르크스 연구는 고사 직전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로 국내 학계 사정은 척박하다. 당장 메가를 번역할 독일어권 연구자조차 몇 남지 않았다. 김세균 교수의 지적처럼 자본주의 공간이 절대불변의 초역사적 공간이 아닌 게 판명된 이상 자본주의의 모순을 진단할 이론이 시급하다. 이번 메가 작업의 소개로 국내 마르크스 연구가 도약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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