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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배려 악용하는 영악한 대학원생도 있다”
“스승의 배려 악용하는 영악한 대학원생도 있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07.05 10:4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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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학박사의 논문대필 증언

정부가 논문 대필을 뿌리 뽑기 위해 칼을 뽑았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선대 시간강사 ㅅ아무개 박사의 유서가 촉매가 됐다. ㅅ박사는 지도교수의 제자 학위논문 여러 편을 대신 써줬다고 밝혔다. 자신이 쓴 논문을 교수와 공동으로 발표한 것도 수십 편이었다. <교수신문>은 국내 유명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근무했던, 교수임용 준비중인 ㄱ아무개 박사의 증언을 들었다.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 ㄱ박사는 “교수가 학생의 연구실적을 빼 먹는 것 못지않게 학생이 스승의 배려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논문 대필의 경우, 요즘은 교수가 시킨다기보다 학생이 더 영악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ㄱ박사의 증언은 대학원 교육의 실태뿐 아니라 ‘논문 편수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대학의 이면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ㄱ박사의 증언을 가감 없이 싣는다.

 

언론에서는 교수가 학생의 연구 실적을 ‘빼 먹는’ 것으로만 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많다. 스승의 배려를 악용해 학생이 교수를 이용해 먹는 것이다. 나는 2007년, 한 파트타임 대학원생에게 ‘비자발적 논문 대필’을 ‘당했다.’ 2008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요즘은 교수가 시킨다기보다 학생이 더 영악한 것 같다. 교수들의 억울한 실상을 알리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


2007년 봄부터 넉 달 동안 논문 네 편을 썼다. 영문 학술지에 두 편,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이하 학진) 등재 학술지에 두 편. 영어 논문 한 편은 해외 SCI 저널에 실렸고, 다른 한 편은 SCI-E 저널에 실렸다. 네 편 모두 내가 설계해 만든 장비와 조건으로 실험해 데이터를 얻었고 논문도 내가 썼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제1저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서울 사립대 박사과정에 다니던 ㄴ아무개 박사다. 현재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ㄴ박사는 협동과정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해 내 연구를 도왔던 학생이다. 내가 속한 연구소가 기업체와 연구 과제를 진행할 때 ㄴ박사를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다른 서울 사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그 기업체에 취직했다. 내가 맡은 연구 과제에 그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박사과정(협동과정)에 진학했다.

 

졸업할 때가 되자 ㄴ박사는 나를 무척 괴롭혔다. 당시 그가 다니던 사립대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SCI급 두 편, 학진 등재(후보)지 두 편 등 논문 네 편을 써야 한다고 했다. 논문 네 편만 쓰면 졸업하는 것으로 지도교수와는 이야기가 됐다며 ‘졸업해야겠다. 졸업시켜 달라’고 나를 졸랐다. 나중에는 ‘아내가 아프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식으로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졸업시켜 달라’는 말은, 논문을 대신 써 달라는 뜻이었다.

대신 써준 논문에 석사 지도교수까지 이름 올려

 

내가 보기에 ㄴ박사는 논문을 제대로 쓸 능력이 없었다. 논문을 써보라고 했더니 리포트도 안 되는, 잡문 수준의 글을 가져왔다. 실험 데이터 해석조차 제대로 못 해 무척 혼을 내기도 했다. 어쨌든 내 연구를 도와주고 있는 학생이어서 책임감을 느꼈다. 할 수 없이 내가 2004년 진행했던 실험을 바탕으로 해외 SCI저널에 논문을 썼다. ㄴ박사를 주저자로,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제2저자로 해서 논문을 제출했다. 나는 교신저자에 만족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논문 역시 내가 썼다. ㄴ박사는 아이디어를 전혀 내지 못한 채 내가 지시한 대로 실험만 도왔다. 아이디어는 전혀 내지 않고 실험만 도운 사람은 보통 저자에 올리지 않는데 나머지 세 편도 그 친구를 제1저자로 올렸다. 두 번째 논문부터는 요구가 하나 더 늘었다. 박사과정 지도교수뿐 아니라 석사학위 지도교수까지 이름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4명이 저자로 들어갔다. 석사 지도교수는 모두 두 편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넣어줬다. 마지막 네 번째 논문은 ㄴ박사가 직접 써서 국내 학술지에 투고했다. 그 학회에서 나에게 ‘이건 논문이 아니다’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해 보내 왔다. 결국 내가 다시 써줬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에는 데이터 해석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가르쳐야 했다. 처음에는 해외 SCI 저널에 내가 써 준 논문을 박사 논문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했다. 논문 초고와 당시 실험 데이터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주지 않았다. ㄴ박사가 쓴 박사학위 논문은 내가 보기에 논문이 아니었다. 서론의 문헌연구 부분은 내 박사 논문을 그대로 ‘copy and paste’해서 썼고, 본문에는 내가 써 준 나머지 세 편의 논문을 넣었다. 

대학원생 때부터 ‘논문 품앗이’ 몸에 배

 

2008년에도 수도권 한 대학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연구소를 그만 두고 아는 교수 연구실에서 일을 도울 때였다. SCI급 학술지에 논문 두 편을 썼다. 실험을 도운 20대 초반의 여학생을 공동저자로 넣어줬다. 그 여학생은 그 교수 밑에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그러다 미국 대학에 초빙 조교수로 나가있을 때 그 학생이 이메일을 보냈다. 2009년 초로 기억한다. 언제까지 논문을 쓰기로 교수에게 약속했는데 대신 써달라는, 다급한 요구였다. 조건이 있었다. 자기를 제1저자로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앞서 겪은 일도 있고 해서 거절했다.


황당했다. 내가 보기에 그 학생은 남한테 부탁해서라도 논문만 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 보면 이 학생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공학 분야는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논문 품앗이’가 공공연히 벌어진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학생의 이름을 논문에 올려주면 상대방 역시 논문을 낼 때 자기 이름을 넣어주는 식이다. 교수가 되려면 연구 실적이 중요한 탓에 최대한 끌어올려놓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면 ‘논문에 자기 이름을 올려줄 교수 지원자’부터 찾게 된다. 대학원생 때부터 몸에 밴 ‘논문 품앗이’가 교수가 되어서도 이어지는 셈이다.


학위 취득 자체가 목적인 학생이 늘어난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취업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4년제 대학 진학률이 20%였다. 지금은 60%가 넘는다. 석사 학위가 예전의 학사 학위 대접도 못 받는다. 대학원 입학정원이 급격하게 팽창하다 보니 대학원에 입학할 때 ‘구멍’이 많다. 자질이 안 되고, 애초 대학원에 갈 생각이 없었던 친구도 대학원에 온다. 논문을 쓰려면 데이터를 해석하고 자기 논지를 전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는 친구가 많다.

남이 써 준 논문 내고 오히려 당당한 학생도…


이런 일도 있었다. 아시아권 대학에 교수로 있는 한 선배와 공동으로 논문을 썼다. 실험 데이터의 70% 이상을 내가 얻었다. 데이터 해석과 내용을 주고받으며 논문을 완성했다. 막상 논문이 나오자 낯선 이름이 보였다. 알고 보니 그 선배의 학교 후배였다. 선배는 “미안하다”고 했다. 정부 지원 장학금을 받아 그 대학의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논문을 내야 하는데 도저히 논문을 못 써 ‘울며 겨자 먹기’로 이름을 올려줬다는 설명이었다. 자기가 추천한 학생이어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몇 년 후 사석에서 우연히 그 여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더니 그 여학생은 뻔뻔스럽게도 “나는 OOO 교수가 시키는 대로 그 데이터로 논문을 썼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무심하지 않게 학생을 지도했다면 그 학생이 실험을 제대로 했는지, 논문을 어디서 만들어 왔는지 교수가 판단할 수 있다. 결국 교수가 논문 실적 내는데 쫓기다 보니 교육을 등한시해 생긴 현상이다. 실적 압박을 받는 교수가 알면서 묵인하거나 은근히 부추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ㄴ박사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나, 앞서 언급한 선배는 ‘피해자’다. 협동과정은 실험 등이 대부분 연구소에서 이뤄진다. 학생이 프로젝트를 따서 지도교수를 ‘고르는’ 경우도 있다. 학생 지도·관리가 쉽지 않지만 대학본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다. 그 학생이 논문을 내면 대학의 연구 실적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교수를 평가해 대학원생을 지원해 주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학생에 대한 지원은 학생을 평가해서 지원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이공계 분야는 학생을 직접 평가해 지원하고, 그 학생이 잘 하면 거꾸로 교수에게 지원을 더해 주는 방식으로 바꿨으면 싶다. 교수가 자기 실적을 위해, 혹은 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논문을 대신 써 주는 경우도 있으니 서류 평가만 해선 안 된다. 직접 발표나 구술면접 등을 통해 선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리=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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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교수 2010-07-12 17:33:18
"서강사"경우는 생사여탈권를 쥔 교수가 교수임용 미끼를 통한 논문대필이었다. 정규직교수가 비열한 학생에게 끌려 다닌 것은 대학원'학생지도'에 성실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낸 한국 대학원교육의 문제이고 이에 가담한 공범이다."서강사"는 학자로 살려고 했던 것이 이런 추락을 가져왔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비리이지 비교하지말아야!

똑같군 2010-07-10 20:04:22
그렇게 비열하게 나오는 학생들만 탓할 것 아니다.
인터뷰를 한 사람도 거절 못 하고, 그 사람 말을 다 믿는다면,
네 편이나 거짓논문을 써준 것 반성해야 한다.
다 공범이다. 그런 학생이나 교수나 남탓만 하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황당 2010-07-07 18:26:03
보통 교육대학원 석사들중에 중고등학교 선생인 경우에 대학지도교수들이 논문을 써주는 경우는 많이 들어서도, 공대의 순수 학생에게도 이런일이 벌어진다니 참 할말이 없군요. 대학교가 국민 세금 축내는 비효율적 기관이 되기전에 큰 개혁이 있어야 겠습니다. 대학 또는 교수 스스로는 절대로 할수없는 일인 듯 합니다. 지금까지 안전지대로 방관되어온 대학이 부조리의 온상이 되어가는 느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