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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그토록 불길한 權府들
[대학정론] 그토록 불길한 權府들
  • 논설위원
  • 승인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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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30:57
무관의 제왕, 제4의 권부 등의 수식은 기자와 언론을 빗대는 보기좋은 비유들이다. 이 비유를 들여다 보면, 모두 전근대적 권력관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왕’, ‘권부’라니. 그러고보면 한국의 언론이란 얼마나 권력 일반과 가까이 붙어 왔던가. 한 귀화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언론사들은 청와대와 가까운 곳에 위치했으며 미국 대사관과도 지근 거리에 있다. 재계의 뭍 별들도 이들 언론사와 엎어지면 코닿는 거리에 있으니 결코 ‘제왕’이니 ‘권부’니 하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 한국사회의 ‘권부’들이 벌이는 눈꼴 사나운 행태들은 보노라면 참을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밝힌 ‘2001년 언론자유도 보고서’를 자사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했는가 하면, 최근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간한 ‘세계 언론자유 연례 보고서 2002’도 역시 입맛에 따라 제멋대로 보도한 것을 보면 그렇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거대 언론사들은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을 지녔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목은 대문짝처럼 뽑고, 그렇지 않은 것은 슬며시 제쳐놓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비판적인 언론을 약화시키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대목을 소개하면서도, “몇몇 소수 독재적 일가들(several oligarchic families)과 가까운 조선, 중앙, 동아 이른바 빅 3 일간지들과 힘을 잃고 있는 김대중 사이에 긴장관계가 있음”을 확인한 서울 특판원의 언급은 무시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국경없는 기자회’가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듯 이들은 ‘자주민보’ 기자들의 구속 문제와 관련, “국경없는 기자회는 정보기관이 이들 기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소지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사실 확인 취재를 진행했지만, 우리 언론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꿀 먹은 벙어리 모양 눈감고 있다.

우스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전교조 해직교사들과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민주화운동을 인정한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시비를 걸고 나온 것도 지나칠 수 없다. 일부 학자들까지 동원한 시비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제까지 뽑아가면서 딴지를 거는데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괜히 우려된다느니, 지켜보겠다느니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과연 언론의 입이 모택동이 말한 권력이 나오는 총구와 뭐 다를게 있겠는가.

그들은 여전히 국가권력과의 감정싸움에 매달려 권력의 정의를 실현하거나 감시하기보다는 함께 나누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지 않다면, 이 기묘한 기사의 奸智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체포영장’을 동반한 합법적 권력 집행이었는지 가장 기초적인 것조차 확인하지 않고, ‘색깔론’의 시각으로 슬쩍 넘어가고, ‘민주화’말만 나오면 생트집을 거는가 하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다 빼버리고 이익되는 것만 넙죽 넙죽 받아 챙긴다면, 이 ‘권부’에서 나오는 ‘제왕’들의 말길[言路]이 어찌 두렵고 무섭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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