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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능성과 재앙’, 전자책 논쟁이 뜨겁다
‘새로운 가능성과 재앙’, 전자책 논쟁이 뜨겁다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0.06.28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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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인문학의 만남, 독일까 약일까

스마트폰, 이북(e-Book) 등 최신 정보통신 매체의 등장은 일상생활부터 경제, 문화 전반을 뒤흔들어놓고 있다. 대학가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구글이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면서 일부 미국 대학은 구글과 함께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자책이 인문학 자료를 어떻게 디지털화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전자책의 기능에 대한 문제를 포함해 전자책을 통한 인문학연구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 최근호가 구글 전자책을 둘러싼 이같은 논쟁을 다뤘다.

매튜 조커스 스탠포드대 교수(영문학)는 한 강의에서 1천200편의 소설을 다룬다. 학생들은 그러나 1천200권의 소설책을 읽는 대신 생물학자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기호를 읽어내듯 디지털화한 정보를 활용해 소설을 접한다.

인문학은 오래 전부터 ‘인쇄물’이란 전통적 텍스트를 활용한 연구방식을 고수해 왔지만 달라졌다. 크로니클은 “소설을 예로 들면 책 한권을 정독하면서 작가와 장르, 내용을 분석하던 전통적인 학습방법에서 다수의 작품을 ‘세고’, ‘묶고’, ‘시각화 하고’, ‘구글링(googling) 하면서’ 학습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크로니클은 “스탠포드대는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라며 “미국 내 전자 도서관 확산 움직임은 미시건대(앤 아버), 인디애나대(블루밍턴) 등이 참여하고 있는 협동 디지털 도서관인 ‘HathiTrust’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고 전했다. 스탠포드대에서는 매튜 조커스 교수와 비교문학 전공자인 프랑코 모레티 교수 등이 관련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학문을 연구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모레티 교수는 “학자들은 각각의 텍스트를 살피는 방식에서 한 발짝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소설을 예로 들어 “소설을 구조화하고, 시각화 하고 묶어 나가면서 전체를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레티 교수는 “19세기의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소설의 경우, 지금까지 출판된 책만 2만~3만종인데, 그 많은 책을 일일이 다 읽으면서 분석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150년 동안의 문학작품 이론을 분석하고 해석해주는 다양한 디지털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크로니클은 “구글은 전통적 의미의 도서관이 수 십년에 걸쳐 해온 일을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불과 몇 년 동안 해냈다”며 “구글이 기존 책을 전자책으로 전환한 양은 1천200만권, 300개 언어 등으로 구텐베르크 이후 활자화된 책의 10% 정도에 해당 한다”고 설명했다.
구글 전자책은 그러나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연구용이 아니라 광고를 위해 만든 콘텐츠에 가깝다는 것이다. 크로니클은 “이러한 점은 구글 전자책이 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란 사실을 의미한다”며 “단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만 갖고 학자들의 접속을 유발하지 못 할 것이다. 작가나 출판일, 장르가 기재돼 있지 않다는 것도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언어학자인 제프리 넌버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구글의 전자책 사업을 ‘재앙(Train Wreck)’으로 표현한다. 분류기준도 최악이라고 주장한다. 케이티 트럼프너 예일대 교수(비교문학)는 모레티 교수와 한 저널에서 언쟁을 벌였다. 트럼프너 교수는 “스탠포드대 학자들은 ‘사상가’로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해 왔는데, 일부 후배 교수들이 ‘떨어져 읽기’ 같은 연구나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너 교수는 “소설이야말로 깊고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인문학분야다. 만약 소설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한다면 그것은 소설을 잘 못 읽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소통방식이 불러일으킨 변화는 학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하며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구글 전자책의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연구방법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까지 낳았기 때문이다.
전자책의 확산으로 조만간 대학가에도 다양한 방식의 수업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학자들 사이에서 전자책이 어떤 방식으로 정착될지 관심이 높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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