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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이 프루스트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모파상이 프루스트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 백선희 덕성여대·불문학
  • 승인 2010.06.28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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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피에르 바야르 지음, 『예상 표절』(백선희 옮김, 여름언덕, 2010)

표절이란 우리가 알다시피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도용하는 일이다. 그런데 표절을 감시하는 우리의 시각이 왜 언제나 과거만을 향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미래의 작가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표절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햄릿에 대한 수사』, 『바스커빌 가의 개 사건』 등의 작품을 통해 원작의 허점을 지목하고 진범을 찾아내는 추리비평이라는 장르를 만들고, 『문학을 정신분석학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통해 문학과 정신분석학의 전통적 관계를 전복하는가 하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는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등, 독자를 줄곧 역설과 전복의 상황으로 초대해온 피에르 바야르가 그다. 파리 8대학 문학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그가 이번에는 『예상표절』이라는 책을 가지고 표절에 대한 생각을 뒤집고 있다.

선형적 시간개념을 뒤엎다

이 책에서 그는 소포클레스가 프로이트를, 볼테르가 코난 도일을, 모파상이 프루스트를, 카프카가 베케트와 임레 케르테스와 앙투안 보로딘을, 그리고 프라 안젤리코가 잭슨 폴록을 ‘예상표절’했다고 주장한다. 두 작가 사이에 표절 시비가 불거질 때 오직 선형적 시간개념만을 준거로 삼아 뒤이은 작가가 앞선 작가를 표절했다고 단정하는 우리의 관습에 제동을 걸고 피에르 바야르는 ‘부조화’를 근거로 내세우며 예상표절을 얘기한다. 예상표절된 구절은 그것이 실린 작품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며, 다른 시간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자가 예상표절의 전형적인 예로 제시한 볼테르의 텍스트는 그 추론기법에서 코난 도일의 것과 놀랍도록 일치하는데, 볼테르의 텍스트가 그의 전체 작품이나 시대적 맥락과 부조화를 이루는 반면, 코난 도일의 글에서는 추리기법이 주된 서술방식을 이루기 때문에 볼테르가 코난 도일을 예상표절했다고 봐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제시된 모파상의 텍스트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연상작용을 서술한 이 텍스트는 완벽하게 프루스트풍이어서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읽었을 때 프루스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루스트의 글로 짐작할 정도다. ‘기억의 연상작용’ 역시 모파상의 주요 테마가 아니어서 모파상의 전체 작품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데다 우리가 프루스트의 글을 읽으면서 모파상의 흔적을 느끼기는 힘들기에, 이 경우 역시 프루스트의 글을 주 텍스트로, 모파상의 글을 부 텍스트로 봐야 하며 모파상이 프루스트를 예상표절한 것이 더 사실인 듯 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상표절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먼저 그는 ‘상호텍스트성’과 텍스트의 유동성 개념과 연계해서 ‘회고적 영향’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선구자들을 창조한다”고 말한 보르헤스처럼 바야르는 문학작품을 모든 독자와 모든 무의식과의 접촉에 반응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며, 독서 행위가 그 대상으로 삼는 텍스트들에 교란을 일으켜 텍스트들을 변화시킨다고 본다. 따라서 프루스트를 알고 난 뒤 읽는 모파상의 텍스트와 프루스트를 알지 못하고 읽는 모파상의 텍스트는 다를 수밖에 없다. 프루스트에 대한 독서가 모파상의 텍스트를 프루스트 풍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 벽화와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안젤리코의 벽화에 뿌려진 안료는 잭슨 폴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얼룩에 불과했으나 잭슨 폴록의 출현과 더불어 드리핑 기법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고, 안젤리코는 5세기를 앞질러 잭슨 폴록을 예상표절한 셈이 된다. 또는, 안젤리코가 잭슨 폴록을 예상표절한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회고적 영향’이다.

  
예상표절에 대한 또 다른 설명으로 저자는 우리가 생각의 소유자가 아니라 ‘세입자’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타인의 생각 속에 끼어들어 타인보다 빨리 생각을 완성하는 경우를 얘기한다. 프로이트의 제자이면서 정신분석학의 이론가였던 타우스크가 바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 표절행위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타우스크를 멀리하려 했던 프로이트의 태도와 프로이트로부터 멀어진 뒤 자살한 타우스크의 행동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니체와 프로이트 텍스트의 유사성은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설명된다.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 두 대가의 텍스트를 예로 들며 바야르는 프로이트가 표절의 두려움 때문에 니체의 책을 멀리한 사실을 환기하고, 아마도 니체가 과거로 뛰어들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부터 영감을 받음으로써 프로이트를 예상표절하게 됐으리라고 추측한다. 문학과 예술과 사상의 역사는 선형적이지 않고 순환적이어서 시간적 간격을 두고 동일한 테마나 형태나 직관이 다시 나타나기에 과거로 가서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상비평'이라는 새로운 장르 시도

이렇듯 예상표절 개념은 과거의 작품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고 예술작품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따라서 이 개념을 받아들이자면 문학과 예술사에 대한 생각이 변해야 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일방통행하며 뻣뻣하게 굳은 전통적인 문학사로는 이 예상표절 개념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빅토르 위고(낭만주의)가 장 라신(고전주의)보다 앞설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연대기적 허상’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 바 있는 발레리를 좇아 피에르 바야르는 새로운 문학사를, 고전적인 시간 표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인 문학사,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연대기 전체가 변하는 유동적인 문학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문학사는 사건적 역사와는 무관하게 작가들을 자리매김할 것이다. 예를 들어 『트리스트럼 섄디』의 작가 로렌스 스턴은 분명히 18세기 작가이지만 그 현대적인 요소들 때문에 제임스 조이스 뒤에 자리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동향이 출현하면 어쩌면 더 훗날로, 21세기 중반쯤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바야르는 말한다. 

예상표절 개념에서 출발한 작가는 미래의 텍스트들에 주목하는 '예상비평'이라는 새로운 비평장르를 거론하고, 그 본보기로 카프카가 교류하며 모방했을 미래의 여성 작가를 ‘상상’해낸다. 카프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통해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이 미래의 여성 유령이 카프카 작품에 자리한 ‘남성성의 거부’를 설명해주고, 원천을 알 수 없는 카프카 텍스트의 몇몇 수수께끼들을 풀어주리라고 작가는 기대하는 것이다.  

 
사실, 읽기와 해석의 문제는 피에르 바야르가 전 작품을 통해 천착해온 핵심 문제다. 전작들에서 그는 독자의 개입, 읽기의 한계와 위험, 해석 망상 등의 문제에 주목하며 끊임없이 텍스트에 다르게 귀 기울이도록 독자를 인도해 왔다. 이 책 『예상표절』도 그런 시도의 하나다. 그는 『내일은 기록되어 있다』(2005)에서부터 정신분석학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문학연구가 과거의 영향에만 주목하는 점을 문제 삼고 글쓰기와 읽기에 작용하는 미래의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 『예상표절』로 이어진 것이다. 역설과 전복을 즐겨 활용하는 바야르의 이 모든 시도들은 어떤 구속도 거부하고 글쓰기와 읽기라는 두 창조적 작업을 깊이 이해하려는 일관된 행보에 다름 아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론 안에서 가능한 한 픽션에 다가가는 것이 그의 이상”이라고 말하며 “이론과 픽션의 중간 장르를 창조”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가 이 책의 말미에서 시도하고 있는 예상비평이 그런 새로운 장르로 보인다.

백선희 덕성여대·불문학

필자는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덕성여대 등에 출강한다. 번역서로는 『무거움과 가벼움에 관한 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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