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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김기봉 외 지음, 푸른역사刊)
[이책을 주목한다]『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김기봉 외 지음, 푸른역사刊)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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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13:45

유행으로 치자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새삼스럽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니. 그만큼 역사학계에서는 실증주의에 바탕한 객관성의 신화가 우뚝 솟아있는 것일까. 물론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야 누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을 기술하는 이의 시선을 통해 사건의 의미는 한 번 걸러지게 마련이고, 기록된 문헌을 해석하는 학자의 입장을 경유하면서, 그 사건은 현재적 의미를 덧입으며 다시 한 번 굴절되게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건과 이를 둘러싼 두 번의 굴절, 그러니까 여기서 빚어지는 객관과 주관의 긴장이야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으로 인해 ‘역사학의 위기’가 논의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이 묻고 있는 것은 객관과 주관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학의 가능성이다. 따라서 이 책이 역사학 그 자체에 대한 탐사의 성격을 갖는 것은 필연인 듯 싶다. 이것은 바로 역사철학의 범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편저자의 의도가 ‘정통 역사가’와 ‘메타-역사가’의 사이에서 펼쳐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통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는 이른바 ‘정통역사가들’(proper historians)에게 보여주기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진리다. 이에 반해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학에 미칠 혁명적 결과를 과신했던 ‘메타-역사가들’(meta-historians)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학 내에서 결국 찻잔 속의 폭풍만을 일으켰을 뿐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변하면 변할수록 변하지 않는다’라는 역사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이와 더불어 관심을 가질만한 사항은 거대 서사의 붕괴에 따른 파장이 역사학에 미친 여파이다. E.H. 카아 이래로 ‘진보로서의 역사’,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구축해오던 역사학이 거대 서사의 붕괴에 직면하여 다른 방식의 서술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란 계몽주의 이래 근대의 기획이 만들어낸 ‘허구’였다. 서구에서는 적어도 1780년대 이전에는 집합 단수로서의 ‘역사’란 개념은 없었다. … 이러한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과거의 역사 담론을 되찾아오고자 하는 시도가 포스트모던 역사 이론이다. 전통적으로 역사란 과거를 인과론적으로 설명하는 과학이라기보다는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사이다.”(김기봉, ‘포스트모던시대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16편이고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 제2부는 역사학의 응전, 제3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유. 제1부는 다소 반복되는 느낌이 들지만, 근대 역사학의 전개 과정과 의미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으며 역사학이 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가의 맥락이 쉽게 제시돼 있다. 특히 제4장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호학적 역사학: 화쟁기호학을 중심으로’는 ‘언어’의 속성을 중심에 두고 논의를 풀어 간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기도 한다. 제2부에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역사학의 응전 형태와 한국, 독일, 중국의 사례가 제시돼 있다.

제3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 교육과 제3세계 역사 연구, 그리고 한국 사학의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여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내용이다. 여기에 참여한 역사학자들의 면면은 곽차섭 부산대, 강성호 순천대, 김기봉 경기대, 김택현 성균관대, 서의식 서울산업대, 양호환 서울대, 육영수 중앙대, 이영석 광주대, 이영효 전남대, 임상우 서강대, 조지형 이화여대, 조한욱 교원대 교수와 김호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및 김수영 국민대, 최호근 고려대 강사 등이다.

한 가지 물음. 이 책에서는 극복하기 위한 대상으로 레오폴트 폰 랑케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프로이센의 역사가 랑케는 세미나를 통해 예비 역사가들을 훈련시켰고 역사가들의 ‘실험장소‘로서의 1차 사료 보관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이제 ‘역사적인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편견 혹은 현실적인 관심 등을 극복할 수 있는 학문적인 자기통제와 절제를 갖추는 것을 의미했다. 오랫동안 철학의 하녀처럼 취급됐던 역사 분야가 비로소 독자적으로 과학적인 결과를 획득할 수 있는 전문 영역으로 탄생한 것이다. ‘사실’이 철학 이전에 왔고, 이론은 ‘쓸모 없는 시스템’으로 간주됨으로써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야를 지향하는 역사가 독자적인 분야로 인식되는 ‘실로 놀라운 전환’이었다.”(육영수,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와 역사학’) 그런데 근대 역사학의 출발점으로 거론되는 랑케 저작의 국내 번역은 과연 제대로 돼 있는 실정인가. 다른 분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당한 거품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양상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역사학에서 일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성과가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현 단계 역사학 토양의 한계 인식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홍기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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